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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떠나는 대통령의 뒷모습

등록 2017-01-12 19:01수정 2017-01-12 21:27

정남구
논설위원

버락 오바마가 떠난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8년간 재임한 그가 퇴임을 열흘 앞두고 10일 고별연설을 했다. 떠나면서도 희망을 말한 오바마에게 사람들은 “4년 더”를 외치며 뜨겁게 박수를 보냈다. 대통령과 저렇게 작별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워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우리도 머잖아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없이 착잡하다. 이번에 떠나는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진행하고 있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든 안 하든,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형사소추를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8년 전엔 퇴임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마주했는데….

한국갤럽이 1988년부터 최근까지 조사한 역대 대통령들의 국정에 대한 지지도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제13대 노태우 대통령부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통령이 집권 첫해엔 지지율이 높다가 해가 갈수록 떨어졌다. 집권 마지막 해에 지지율이 30%를 넘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퇴임 직전 분기에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27%였다. 집권 4년째보다 마지막 해에 지지도가 오른 유일한 사례다.

지난해 큰 지진 피해를 당한 일본 구마모토현을 9월에 방문한 적이 있다. 현 지사에게 주민들한테 칭찬받는 비결을 묻자 새뮤얼 헌팅턴의 ‘갭 가설’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실적을 기대치로 나눈 값이 만족도니까, 기대 수준이 낮을 때 신속히 성과를 내려고 애썼습니다.”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한국의 대의정치는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우리는 대통령을 뽑을 때 소다를 잔뜩 넣은 빵 반죽처럼 기대에 부풀었다가 곧 실망하고, 토라지고, 후회하고, 분노하는 감정의 변화를 주기적으로 반복했다. 청와대 터가 나빠서는 아닐 것이다.

문제를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제왕적 대통령’이란 표현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한 측면만을 본 것 같다. 강력한 힘을 가진 대통령을 바라는 것은 바로 우리 국민이다. 그래야 꼬인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리듯, 문제를 깔끔히 해결해줄 테니까, 라고 생각한다. 주한미국대사관의 문정관 그레고리 헨더슨이 1951년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한 뒤 쓴 여행기에 “노천에서 밤을 지새우는 거지조차도 정치 문제를 명쾌하고 열정적으로 논할 정도였다”고 썼다.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중앙권력에 늘 관심을 둬야 하는 이 나라 정치 특징이 크게 바뀐 것 같지 않다. 개헌 방향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제를 지지하는 쪽이 훨씬 많다. 그러니 차기 대통령도 현행 헌법에 따라 뽑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찌하면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까? 도덕적이고 역량이 뛰어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말은 하나 마나 한 얘기다. 나는 정치, 정치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본다.

정치는 다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상호 존중은 기본적 미덕이요, 타협은 불가결하다. 열혈 지지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경쟁자나 그 지지자들을 무차별 공격하는 것을 볼 때 나는 섬뜩함을 느낀다. 시퍼렇게 날이 선 말들이 튕기는 불꽃 앞에서 진지함은 설 자리가 좁다. 다면적인 후보 검증은 애시당초 어렵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잘해보라, 두고 보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면, 대통령 지지도 그래프의 모양새는 다음에도 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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