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시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한 최초의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시간 현상을 ‘현재’를 기점으로 삼아 숙고했다. 시간이란 끊임없이 흐르는 현재의 연속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사라진 시간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은 20세기에 마르틴 하이데거에게서 나왔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시간을 아리스토텔레스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보았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현재의 연속이 아니다. 우리 인간은 단순히 현재만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미리 달려가는 존재이며 동시에 과거를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하는 존재다. 인간은 ‘다가올 미래’와 ‘지나간 과거’를 함께 품음으로써 현재를 산다. 그러므로 미래는 다가올 시간으로서 현재 안에 있고, 과거는 간직된 시간으로서 마찬가지로 현재 안에 있다. 현재 안에 미래와 과거가, 다가올 것과 지나간 것이 함께 속해 있다. 하이데거의 이런 시간 이해는 과거를 기억하려는 우리의 투쟁에 암시를 준다. 미래를 열어 밝히고자 한다면 우리는 과거를 그저 흘려보내거나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잊지 않으려고 세운 소녀상이 과거를 현재로 끌어당겨 미래를 열어가려는 집단적 기억투쟁의 모범을 보여준다. 소녀상을 세우고 지키는 것은 소녀상이 상징하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반인륜 범죄를 망각 속에 묻지 않겠다는 집단적 결의다. 소녀상은 과거가 표류하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닻이며 기억이 유실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둑이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정부의 12·28 합의는 일제의 전쟁범죄를 역사의 뒷길로 치워버리자는 망각의 담합이었다. 이 합의를 주도한 세력, 그러니까 일본의 극우세력과 한국의 수구세력, 그리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패권주의 세력은 12·28 합의로 과거를 봉인함으로써 세 나라에 모두 득이 되는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합창했다. 그러나 과거를 바르게 기억하지 않는 한 미래는 바르게 열릴 수 없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에 새겨진 괴로움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고통을 기억하고 가해자의 과오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 괴로움을 잊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고통과 과오가 되풀이되지 않는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1월18일 부산 대학생겨레하나 회원들이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에서 소녀상 지킴이 발대식을 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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