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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다이칸야마의 도시재생 / 나효우

등록 2017-02-03 19:17수정 2017-02-03 21:08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사람마다 여행 습관은 제각각이다. 나는 여행할 때 꼭 지도를 들고 다닌다. 여행 일정의 방문지와 식당 위치뿐만 아니라 강과 도로 등을 보고 마을을 짐짓 그려본다. 대개 마을 중심에는 전통시장이 있기 마련이다. 지도에 도로가 복잡하게 그려져 있다면 많은 상점들과 붐비는 사람들이 상상된다. 아름다운 마을은 대개 강을 끼고 있거나 가까운 곳에 공원과 산이 있다. 그리고 상상의 마을 풍경이 실제로 들어맞을까 기대감으로 흥분된다. 역사의 굴곡을 따라 건축 양식이 다르고 고도와 기후에 따라 창과 문의 폭과 높낮이가 다르다. 그러나 이런 상상이 매번 맞는 것은 아니다. 분명 좁다란 골목길 따라 건물이 많지만 상점문은 닫혀 있고, 더러 우울하거나 말을 붙이기 힘든 성난 표정의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폐허 같은 마을에선 강아지들도 갈비뼈가 드러난 채 숨쉬기조차 힘들어한다. 반대로 높은 건물은 없어도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고 거리 선술집에서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들리는 마을은 생기가 느껴진다. 이런 마을은 아이들도 아침부터 재잘거리며 등교를 한다. 우리나라 전국 144개 시·자치구 중에 절반이 훨씬 넘는 96곳이 도시쇠퇴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기존의 재개발·재건축 방식이 주민 간 갈등과 경제적 역효과 등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낡은 건물을 해체하고 높은 빌딩을 세운다고 마을에 생기가 돌지는 않을 것이다. 유명하다는 맛집을 유치하다가 오히려 지역상권을 망치거나, 예술인들을 유치한다고 한두 해 생색내기 지원을 하다가 외려 욕을 먹기도 했다.

일본 도쿄의 시부야, 다이칸야마 지역은 일본의 대표적인 도시재생 성공모델로 꼽힌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다이칸야마는 ‘숲속의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쓰타야서점과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맛집 등으로 최근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다이칸야마 지역은 1970년대에 지은 노후한 단지형 아파트가 많은 곳이었다. 90년대 들어 도시재생을 기획하면서 주민들의 사생활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지역 활성화를 꾀하기로 했다. 가로변에는 다양한 가로경관을 유지하되 지역커뮤니티 시설, 중심광장 등 공공시설을 배치하고, 보행자들에게는 공개공간을 내줬다. 상가 활성화를 위해 서로 연결해주되 조용한 휴식이 필요한 주거지와 공원, 공공시설에 접근로를 별도로 만들었다. 다이칸야마의 쓰타야서점 역시 마을 경관과 조화를 고려해서 설계를 하고, 내부에는 벽을 없애고 책과 관련된 콘텐츠가 소통하고 연결되도록 건축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을사람이다. 다이칸야마 지역에는 마을의 다양한 이야기와 콘텐츠를 안내하는 마을여행 프로그램이 10여개 있다. 단지 외부 여행자들을 위한 소개가 아니라 마을의 역사와 문화콘텐츠를 지역주민들이 이해하고 스스로 연결하도록 한다. 쓰타야서점에도 각 장르에 정통한 전문담당자(Concierge, 컨시어지)가 상품 매입부터 매장 구성을 맡고 방문한 고객에게 전문적인 안내를 해준다. 한달에 한번 마을 소식지를 발간하여 서점과 마을을 연결한다. 행정은 마을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일을 지원한다. 마을은 인체의 오장육부와 같아서 막힌 곳은 뚫어주고 따스하게 품어줄 곳은 잘 감싸줘야 한다. 다이칸야마 지역은 지역주민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상가를 중심으로 지역이 활성화를 이룬 지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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