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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악몽 / 이제훈

등록 2017-02-19 17:27수정 2017-02-19 18:50

이제훈
통일외교팀장

북한은 한국 언론에 ‘악몽’이다. 북한 앞에만 서면 한국 언론은 일쑤 무능하고 무책임해진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다. 자해다.

모든 현존엔 이유가 있다. 북한 보도는 어렵다. 첫째, 북한은 직접 취재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제로 시대’일 땐 더하다. 둘째, 다른 언론 보도의 사실 여부를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북한 당국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외부 언론의 취재에 응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을 활용하는데, ‘선전’과 ‘사실’을 구별하기는 전문가의 감식안으로도 난해하다.

언론의 책무는 ‘확인된 사실’을 근거로 한 보도와 논평이다. 그러므로 북한 관련 보도엔 ‘확인된 사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자각이 전제된 신중하고 사려 깊은 태도가 절실하다.

불행하게도, 한국 언론은 북한 앞에만 서면 광란의 폭주를 서슴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첫째, 확인된 사실이 없거나 드문데 써야 할 기사가 너무 많다. ‘보도 경쟁’에 뒤처질까 두려움에 떠밀려 1면 머리기사부터 몇개 면에 걸쳐 ‘1% 사실과 99%의 추론’으로 메꾼다. 둘째, ‘작문’을 해도 아무런 뒤탈이 없다. 대형 오보에 따른 천문학적 손해배상으로 언론사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보내도 상관없다. 북한 당국은 외부 언론의 대형 오보에도 정정보도 신청이나 법적 소송 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쏟아지는 북한 관련 보도의 옥석을 가리기가 어렵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 뿌리를 깊이 내린 ‘북한 혐오 심리’는 북쪽 당국·매체가 ‘사실’을 말해도 ‘선전’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사실’에 각별히 엄격해야 할 언론이 한술 더 뜬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씨 피살 사건은 ‘북한’이 어떻게 한국 언론을 무능과 무책임의 벼랑으로 이끄는 저주가 될 수 있는지를 시현하고 있다. 김정남씨 피살 사건의 용의자로 ‘북한인’이 처음 등장한 때는 사건 발생 닷새째인 17일 밤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이주 노동자’ 자격으로 체류하던 북한 여권 소지 남성(리정철)을 체포해서다. 그리고 19일 오후 말레이시아 경찰이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리지현·홍송학·오종길·리재남 등 북한인 4명이 사건 당일 말레이시아를 떠났으며 또 다른 북한인 3명을 사건 연루자로 추적 중이라고 발표해 ‘북한 관련성’이 좀 더 구체적으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한국 언론에선 이 사건을 다룬 첫날인 15일치 신문부터 살해 배후로 ‘김정은’을 특정하고는, 살해 이유를 따지는 해설 기사까지 쏟아냈다. “권력 위기 느꼈나…김정은, 고모부 이어 이복형까지 제거” “독침과 미인계…북한이 암살에 쓰는 주무기” “왜 암살됐을까…‘한국 망명설 돌자 제거한 듯’” 따위다. 당시엔 말레이시아 당국이 죽은 이가 김정남씨인지조차 공식 확인하지 않던 때다.

김정남씨가 죽었는데 남성 용의자가 모두 북한 국적자라니, ‘살해 배후에 북한 당국이 있을까?’는 언론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의 범위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 너머는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작문’이다. 언론의 1차 책무는 ‘사실’을 확인해 보도하는 일이다. 그 사실을 실마리로 삼아 추론하고 평가하는 건 독자의 권리다. 언론이 ‘사실 검증’에 태만한 채 추론에 추론을 거듭하며 ‘작문’에 헌신하면, 선정 보도로 시민을 호리는 황색 언론이 된다. 음모론과 괴담을 배양하는 모판이다.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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