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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칼럼] 선제타격, 실제로 할 수 있을까 / 정세현

등록 2017-02-26 17:46수정 2017-02-26 18:52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선제타격이 북핵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신의 한 수’로 보일 수도 있지만, 페리도 지적했듯이 북핵 능력이 고도화된 지금 상황에서는 더더욱 쓸 수 없는 방법이다. 만에 하나라도 한·미가 오판을 해서 선제타격이 실시되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 조야에서 대북 선제타격이 거론된다. 그런 와중에 지난 12일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의외로 북한에 대해서 말을 아끼던 트럼프가 23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매우 매우 위험한 국가”라고 규정하고 미사일방어체제(MD) 강화 외에 다른 군사적 조처도 취할 뜻을 비쳤다. 그러면 1993년 북핵문제 발생 후 24년 동안 북핵문제 해법 족보에 올라 있던 선제타격이 트럼프 시대에는 실시될 수 있을까?

선제타격론은 1994년 봄 미국에서 나왔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자, 김영삼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4월부터 베를린에서 북한과 비공개 접촉을 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베를린 접촉은 제네바 미-북 회담으로 승격되어 차수를 거듭했다. 그러나 미-북 협상은 순항하지 못했다. 특히 북한의 협상전략은 미국을 지치고 화나게 했다. 그러자 미국이 대북 선제타격 계획을 세웠다. 협상으로 북한 핵개발을 막으려 했지만, 그게 어렵다면 영변 핵단지를 선제타격해서 화근을 없애버리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제타격은 실행되지 않았다. 대북 압박을 주문했던 김영삼 대통령도 막상 선제타격이 임박하자 외무장관을 워싱턴에 급파해 반대 의사를 전했다. 당시 미 국방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는 지난해 11월15일 연세대 초청 강연에서 1994년 영변 핵단지를 선제타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영변 핵단지 선제타격 작전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북한의 반격으로 전면전이 벌어지면 한국이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6월 중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김일성 북한 주석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김일성이 카터에게 남북정상회담 중재를 제안했다. 대화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에 상황이 급반전됐다.” 페리 전 장관은 거기까지만 얘기했지만 주한미군의 내부검토 결과 선제타격이 몰고 올 피해 규모가 엄청났었다.

필자는 당시 청와대 통일비서관이었기 때문에 주한미군 내부검토 결과의 내용을 좀 들을 수 있었다. 요지는 대충 이랬던 걸로 기억된다. “영변 핵단지 선제타격 자체는 사흘 이내에 끝난다. 그러나 영변을 공격당한 북한은 휴전선 가까이 전진배치된 장사정포 방사포로 남한 수도권을 공격하고 300~500㎞ 단거리 미사일들을 발사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전면전으로 번지면 남북이 모두 초토화되고 6·25 때 이상의 희생을 당할 것이다. 전후복구에는 30년이 걸릴 것이고 3000억달러 이상의 복구비가 들어갈 것이다.” 선제타격의 부작용이 이쯤 되면 미국도 동맹국을 파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페리 장관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결과적으로 북한에 핵능력 고도화의 시간을 벌어주었다”고 지적한 뒤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 핵무기가 한 개도 없던 1994년에도 선제타격이 가져올 후과 때문에 선제타격을 하지 못했다. 북한이 핵폭탄을 10개쯤 가지고 있다고 분석해놓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선제타격을 해야 한다고? 그럼 그 핵폭탄들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 줄 알고 찾아서 선제타격을 한단 말인가?”

선제타격이 북핵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신의 한 수’로 보일 수도 있지만, 페리도 지적했듯이 북핵 능력이 고도화된 지금 상황에서는 더더욱 쓸 수 없는 방법이다. 만에 하나라도 한·미가 오판을 해서 선제타격이 실시되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 이전에 7500만 한민족이 회복 불능의 재앙을 입을 것이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상대를 피곤하게 만든다. 합의 후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이행 안 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협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선제타격은, 탁상공론의 주제는 될 수 있을지언정, 북핵문제 해법은 아니다.

후보 시절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대화하겠다”던 트럼프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후 “‘노!’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김정은과의 만남이 너무 늦었다”고 했다. 이건 외교안보팀 구성이 안 끝났지만 미·북 양자대화가 그만큼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제타격을 시사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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