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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대통령 시계 / 박찬수

등록 2017-02-27 17:24수정 2017-02-27 19:12

대통령이 기념시계를 제작해 선물로 주기 시작한 건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인 걸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봉황 문양이 새겨진 대통령 시계를 제작해서 청와대 방문객이나 지지자들에게 선물로 나눠줬다. 가장 유명한 건 김영삼 대통령의 ‘03 시계’다.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 시계’는 아니다. 1992년 14대 대선 때 김영삼 민자당 후보 사조직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유권자들에게 뿌린 게 ‘03 시계’다. 시계 판에 1부터 12까지의 숫자는 하나도 없고 ‘0’과 ‘3’의 숫자만 크게 쓰여 있는 게 독특했다.

대통령 시계가 각광받는 건 청와대의 지나친 권위와 관련이 있다. 대통령 시계를 찼다는 건 대통령을 한 번쯤 만났다는 거고, 곧 권력과 가깝다는 과시의 상징이 된다. 그래서 청와대를 사칭하는 브로커들의 필수품이 대통령 시계다. 2009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엔 청계천에서 가짜 청와대 시계를 만들어 팔던 상인들이 무더기로 적발된 적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점 때문에 시계 제작을 고민하다가 취임 6개월이 지나서야 선물용 손목시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그 전부터 최순실씨가 비선에서 활개를 쳤으니, 시계 제작을 두고 고민한 건 쇼에 불과했던 셈이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해 12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자마자 새로 기념시계를 제작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직함이 적힌 시계 제작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대통령 상징인 봉황 문양을 새기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소설가 최인호씨는 김영삼 정부 말기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단골 이발소에 항상 ‘03 벽시계’가 떡하니 걸려 있었는데 어느 날 가보니 사라지고 없더란다. 어디로 갔느냐고 묻자 이발사 아저씨는 ‘꼴도 보기 싫어 치워버렸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황 총리는 시계를 만들기 전에 이 글부터 읽었어야 했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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