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102번째 편지/ 김이택

등록 2017-03-09 23:55수정 2017-03-10 09:51

김이택

논설위원

곽병찬 대기자가 2년 전 101번째 편지를 보내며 답신을 요구했을 때 거절하신 걸 잘 압니다.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 102번째 편지를 이어 봅니다.

오늘 오전 11시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한다”는 주문이 낭독되면 4년간, 아버지 때부터 따져 22년이나 살았던 그 집에서도 떠나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절망과 분노도 크겠지만 한때나마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기 바랍니다. 당신이 광장에 던져놓은 분열과 갈등의 씨앗, ‘피’ ‘죽음’과 ‘몽둥이’ 식의 살벌한 언어와 폭력은 모두 거둬가십시오. 그 뿌리에 당신이 권력의 힘으로 심어온 거짓과 위선이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에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 생각했고 ‘사익’을 취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의견서를 내셨죠? 측근과 참모들이 공개 증언하고 녹음파일과 업무수첩까지 숱한 증거물을 온 국민이 보고 들었는데 그렇게 주장하다니요? 태극기 들고 광장에 나온 분들을 의식한 변명이겠거니 생각합니다. 특검 수사로 절반의 진실은 드러났고, 남은 절반은 이제 검찰 아니면 다시 꾸려질지도 모를 재특검에서라도 드러나겠지요.

꼭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금 온 나라가 사드 배치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일부에선 17조원의 경제 피해도 예상하더군요. 지난해 7월8일 국방부·외교부도 무시하고 갑자기 사드 배치 발표를 강행한 후유증입니다. 몇 달 더 걸릴 것이라고 공언하던 국방의 뜻도, 대북 제재 국면이라 난색을 표시하던 외교부의 뜻도 아니었고, 미국이 그날을 선택한 것도 아닌 걸로 확인됩니다. 시간을 두고 중국에 “북핵 해결에 진전 없으면 사드 배치가 불가피하다”고 설득하는 절차라도 제대로 밟아놓았다면 지금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았겠지요. 당시는 <한국방송> 보도국장에게 세월호 보도 축소 압력을 넣는 이정현 홍보수석의 육성녹음이 공개되고 “대통령의 뜻”이라며 사표를 종용받았다는 법정 폭로도 잇따르던 때입니다. 설마 당장의 자기 안위 때문에 안보와 국익을 방패막이로 동원한 건 아니겠지요? 결자해지 차원에서라도 해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탄핵 이후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살 만큼 살았다”며 ‘자살조’ 운운하는 극단적 주장도 난무합니다. 탄핵 뒤 구속을 요구하는 여론이 70~80%에 이른다는 보도도 보셨겠지요. 광장의 충돌과 갈등을 막을 책임은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

몇 가지를 당부합니다. 우선 극단세력에 대한 고무·선동을 멈춰주십시오. 올해 1월까지도 청와대 행정관이 엄마부대, 자유청년연합 등 아스팔트 세력과 연락을 주고받았더군요. 이것마저 모르는 일이라고 하실 건가요? 지난달 생일에는 직접 답신을 보내 격려도 했고요. ‘시민단체’란 이름만 빌렸을 뿐 아버지 때부터 해오던 ‘공작정치’ 아닌가요? 오늘부터라도 이런 짓에서 손 떼기 바랍니다.

또 하나, 드러난 사실만이라도 인정하십시오. 뇌물인지 논란은 있지만 대기업들에 원하지 않는 돈을 내게 하고, 그렇게 만든 재단의 돈도 맘대로 빼낼 수 있게 정관까지 바꾼 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40년 지기가 시키는 대로 장관·대사는 물론 기업 인사에다 광고 물량까지 깨알같이 챙기고 악수 장면도 연출하셨다면서요? 국민은 이미 아버지 대부터 두 집안이 한 주머니를 찬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 생각하지는 못했고, ‘사익’을 취한 적도 있다고 국민 앞에 고백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진솔하게 사과한다면 국민도 당신의 거취를 현명하게 판단하지 않겠습니까? 탄핵 결정이 성찰의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상식과 정의가 살아있을 것으로 믿고 ‘탄핵’을 전제로 썼음을 양해 바랍니다.)

ri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셋째는 아들이겠네” 당황스러운 점사가 맞았다 1.

“셋째는 아들이겠네” 당황스러운 점사가 맞았다

‘자폭 기자회견’ 이후 윤석열-한동훈 움직임 [11월11일 뉴스뷰리핑] 2.

‘자폭 기자회견’ 이후 윤석열-한동훈 움직임 [11월11일 뉴스뷰리핑]

‘파우치 사장’의 쓸모 [저널리즘책무실] 3.

‘파우치 사장’의 쓸모 [저널리즘책무실]

훈장을 거부한 이유 [왜냐면] 4.

훈장을 거부한 이유 [왜냐면]

안방 무대 못 찾은 K뮤지컬의 곤혹 [뉴스룸에서] 5.

안방 무대 못 찾은 K뮤지컬의 곤혹 [뉴스룸에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