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경주에 도착했다. 짐을 많이 버렸는데 책방 정리는 일단 포기해야 했다. 책꽂이를 너무 버렸다. 이삿짐 나르는 걸 옆에서 보니 짐 나르고 정리하는 건 금방인데 5톤 트럭 자리잡기와 사다리차 설치가 오래 걸린다. 항상 준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큰딸과 놀이터에 간다. 집 앞에 바로 놀이터가 있다.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을 타고 나면 숨바꼭질이 이어진다. 홍대 앞 연남동과 차이가 있다면 이곳의 배경에는 아파트가 없다. 대신 토함산이 보인다.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나면 차가운 아침 공기가 사라진다. 이사 준비를 하며 몇 번이나 걸었던 길이지만 사는 동네가 되니 보이는 게 달라진다. 빌라가 많이 지어지고 있네. 그래도 하늘은 트여 있다. 사실 두렵다. ‘땅과 집’을 바꾼다는 게. 생각은 자연스럽지만 몸이 느끼는 건 다르다. 언젠가 시골에서 살아야지 하던 생각이 현실이 되었는데 아직 영혼은 몇 걸음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 게다가 둘째아이 출산과 이사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는데. 집 계약 만료 즈음에 출산이 예정되었고, 운영하던 ‘신촌서당’의 작업실도 재계약이 안 되었다. 큰딸아이 유치원은 신청도 못한 상태였는데 복잡한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2년을 앞당겨 터전을 바꾸는 거였다. 다행히 시골학교 병설유치원에 자리가 있어 추첨도 없이 다닐 수 있다는 소식은 우리의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온 가족이 적응 중인데 짐이 먼저 자리를 찾아가고 사람은 뒤따라 제자리를 찾고 있다. 일단 동네지도 만들기를 시작했다. 포털 지도를 출력해서 퍼즐처럼 이어가고 있는데 조금씩 작은 길들이 보이고 방향이 잡힌다. 토함산이 펼쳐진 불국사 아래 불국동에는 불국초등학교와 불국중학교가 있고 심지어 불국사목욕탕도 있다. 온통 ‘불국’인데 지도에 위치를 표시하면 더 가까운 느낌이 든다. 이게 마을인가 보다. 서울에선 ‘마을 만들기’가 한창인데 여기는 그냥 마을이 존재한다. 조금 더 익숙해지고 이곳의 작은 길들이 마음속으로 이어지면, 그때 이전에 하던 일들을 여기서 해볼 생각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다시는 이사와 출산을 동시에 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 같다. 해보니 이건 아닌 거다. 그런데 경험은 이렇게 쌓이지만 상황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이다. 그래서 다시는 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눈앞에 다가오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연애가 그럴 것이고, 출산이 그럴 것이고, 탄핵이 그럴 것이고, 입시가 그럴 것이다. 그래도 다가오면 할 수밖에 없다. 이번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청와대에서 이사를 가고, 새로운 시대는 태어나고. 무척 힘들겠지만 그래도 동시에 진행된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튀어나오겠지. 마음의 준비를 하자. 우리는 다시 각자의 자리에서 지도 만들기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길이 어떻게 이어져 있고 어디에 숨어 있는지. 함께 걸어야 할 길과 나만의 작은 길들은 어디에 있는지. 그런 조감도를 스스로 보아야 할 때이다. 보기에만 좋은 가짜 지도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피곤하고 어려운 시절이다. 오늘 아침에는 큰딸과 함께 토함산 약수터에 올랐다. 다섯살짜리 걸음으로 오른다. 다보탑과 석가탑이 우리 마을에 있는 건 신기한 일이다. 그 너머에는 핵발전소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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