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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자유로운 사람은 굴복하지 않아요 / 이길보라

등록 2017-03-17 18:11수정 2017-03-17 20:58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 작가

나의 20대는 이명박, 박근혜였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8개월간 배낭을 메고 동남아시아를 여행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마주한 건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그래도 다음에는 투표권이 생기니까, 그때는 꼭’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내 손으로 첫 대통령 선거를 치르던 날,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대선 후보 티브이 토론에서 자신의 의견을 소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창피했다. 그렇게 며칠을 울었다. 그리고 지난 3월10일, 마침내 우리는 그를 대통령직에서 파면했다. 혁명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재임 기간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이 아팠고, 죽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윈터 온 파이어: 우크라이나의 자유 투쟁>을 보았다. 2013년 11월21일,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가 유럽연합(EU)과의 조약을 무기한 연기하고 러시아와의 경제 의존을 발표하자, 이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수도 키예프의 독립광장에 모였다. 그렇게 시작된 시위는 에스엔에스(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대학생들이 합류하면서 그 규모는 80만명에 이르렀다. 정부 및 경찰은 이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였고, 자유 투쟁은 93일간 지속되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90년도에 태어난 여성들이 만든 ‘광장 여성 수비대’의 안나 코발렌코 인터뷰였다.

“저희는 1990년대생으로, 독립한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으며 조국의 국경과 애국심의 의미를 잘 알고 있어요.”

이들은 우크라이나 의회가 집회와 시위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법률(공공장소에서 마스크와 헬멧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 포함)을 통과시키자, 이에 반대하는 뜻으로 냄비와 프라이팬을 뒤집어쓰고 광장에 나갔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은 시위를 지속해 나갔고, 마침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탄핵했다. 공교롭게도 키예프 독립광장의 풍경은 겨울이었고, 그것은 2016년 겨울부터 시작되었던 한국의 촛불집회를 연상시켰다. 이후 한 시민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이들은 독립국가에서 성장한 훌륭한 세대이며 자유로운 국민으로 성장했습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아요.”

2016년 7월, 이화여대 학생들이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에 반대하며 농성을 시작했던 그 시점으로부터, 경찰의 폭력진압 앞에서 손을 잡고 불렀던 ‘다시 만난 세계’로부터 새로운 세대들의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독립한 국가에서 태어나, 이명박-박근혜를 겪었지만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이들.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조그만 승리의 경험이,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마주했던 거대한 명박산성이 가져다준 정치적 무기력증과 2014년 세월호 참사로부터 비롯된 국민적 트라우마를 조금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헬조선’은 불편한 것들로 가득하여 왜 나는 매일같이 ‘프로불편러’가 되어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진상 규명을 해야 할 것은 산더미인 곳이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이 나라 국민임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어 고맙다.

얼마 전, 대통령 파면과 동시에 제19대 대통령 재외선거 신고 사이트가 업데이트되었다. 이번 선거일에는 해외에 있을 것 같아 국외 부재자 투표 신청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고양이를 키우며, 장애가 있는 퀴어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 그런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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