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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부엔 카미노 / 나효우

등록 2017-03-31 18:08수정 2017-03-31 21:04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가끔은 혼자서 자신과 오롯이 마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엉겅퀴처럼 나를 둘러싼 근심과 반복되는 일상생활이 버거울 때 가장 멀리 떠나는 기차를 타고 싶다. 마침내 겨우내 입었던 옷들을 벗어던지고 봄처럼 화사한 옷을 꺼내어 산바람 타고 걷는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도 좋지만 가끔은 무궁화호 장항선 열차를 세시간 타고 홀로 떠나는 여행이 설렌다. 옆자리에 누가 앉을지 기대하는 마음도 그 설렘에 한몫을 한다.

욜로(YOLO), ‘단 한 번뿐인 인생’(You Only Live Once)이기에 “자신의 행복”을 뒤로 미루고 싶지 않다. 1인가구가 520만에 이르지 않는가. 혼자 먹는 혼밥, 혼술처럼 혼자서 여행하는 “혼행족”들은 떠날 때는 혼자이지만 돌아올 때는 또 다른 나와 벗들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대가 크다.

오래전에 혼자서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여행을 갔다. 복잡한 마음을 비우고 혼자 걷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로 기대가 컸다. 그런데 머무는 마을마다 이런저런 자료를 모으다 보니 무거운 배낭끈 때문에 어깨가 파일 정도로 아파왔다. 게다가 무거운 카메라를 목에 메고 걸으니 거북이 목이 되었다. 한가득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배낭에 무거운 카메라까지 들고 걷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사람들이 “사진작가예요?” 하고 묻는다. 그중에 길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었는데 남미 원주민 출신이라고 하는 분과 함께 걷는 프랑스 그룹이 있었다. 그는 내 무거운 짐을 보면서 안쓰러운지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스페인어로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좋은 여행 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반바지 차림의 그는 나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면서 인사를 건넸지만 난 무거운 짐이 버거워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길 위를 걷거나 비 오는 숲길을 걷다 보니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무거운 자료들과 카메라 중에 무엇을 버릴까 고민하게 되었다. 산티아고 길이 축복의 길이고 자신을 만나는 길이라고 했는데 내게는 쓸데없는 고민만 더 생긴 셈이다. 나는 길을 걸을수록 더욱 원초적인 인간이 되어갔다. 때가 되면 배고파서 허겁지겁 먹고, 늦은 시간에 마을에 도착하면 잠잘 숙소를 찾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순례길 끝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난 친구들과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서 모두 모이기로 했는데 20여명이 되었다. 우리는 정오 시간 되어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 참여했는데, 그 남미 출신의 원주민이 신부복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안 사실은 그는 프랑스 교외의 작은 성당 신부님이었고, 이날 특별히 미사를 집전한 것이라고 한다. 그날 밤늦게까지 길 위의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취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보니 애써 모은 자료들이 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자료들을 정리하고 나니 배낭 무게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쓰레기 더미를 짊어지고 먼 길을 걸은 셈이다.

인생은 여행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수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중에는 정말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벗들이 있다. 내 안에 켜켜이 쌓아놓은 무거운 짐을 지고서는 소중한 벗을 만날 수 없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한번뿐인 인생, 우리 모두 행복한 여행길에 나서길 바란다. 부엔 카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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