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첫째 아이의 유치원 입학식에 다녀왔다. 시골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라 1학년 입학식과 겸해서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전교생이 모였다. 작은 학교라 모두 모여도 40여명이지만 강당 겸 식당이 꽉 찼는데 유치원생들을 가운데 앉히고 나머지 고학년(?) 아이들이 흡사 호위무사처럼 그 옆에 한 명씩 앉아 있었다. 진행하는 선생님이 일단 아이들을 다독이고, 교장선생님이 등장하자 ‘차렷!’ 하고 외쳤다. 나도 모르게 정신을 차리고 구부정히 앉아 있던 허리를 곧게 세웠다. 물론 시선은 앞을 향하고 있다. ‘국민학교’ 때가 떠올랐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토론하는 자리에 많이 참여했다. 책을 읽으며 배운 게 있는데, ‘차렷’이라는 말이 일본말 ‘기오쓰케’(정신차렷)를 그대로 옮긴 말이라는 것이다. 지난 시절 ‘국민학교’에 이어 대학, 군대에서까지 ‘차렷’이라는 구령은 당연히 쓰는 교육용어로 알았고, 이 말이 무슨 뜻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보려 한 적은 없었다. 오랜만에 듣는 ‘차렷’ 소리에 내 몸은 여전히 열심히 복종하고 있구나. 경주시 불국동으로 이사 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은 둘째 딸아이의 출생신고였다. 첫째 때 해본 경험이 있어 시간이 좀 걸리겠구나 하고 느긋하게 갔다. 한줄 한줄 차례대로 적다 보니 서류 뒷장에 부모의 직업을 표시하는 곳이 있었다. 아마 무슨 통계를 위한 조사겠지. 그런데 첫째 때도 이런 게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보통 이런 조사에는 내가 하는 일과 비슷한 항목이라도 있기 마련인데 이번엔 뭔가 옛날식 분류인지 음악을 하고 기타를 치는 사람이 표시할 곳은 없었다. 이럴 때 내가 쓰는 방식은 저항의 의미로 비워두는 것인데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루쉰 소설에 등장하는 아큐의 ‘정신승리법’을 써보기로 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음악을 하니까 ‘무직’(Mu-sik), 기타를 연주하니까 ‘기타’. 둘 다 있길래 두 군데 모두 표시했다.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는지 담당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서류를 처리해주었다. 사실 보통 이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없어도 된다. 그런데 있다. 부모의 직업을 조사한다거나, 아이들에게 수업하기 전 ‘(정신)차렷’이라고 소리치는 것은 이미 보편적으로 쓸데없고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쯤 어때, 다 좋자고 하는 일인데, 게다가 크게 중요한 부분도 아닌데’ 하며 스스로 문제삼지 않는다. 여전히 이런 일들은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고, 이 일에 반응하는 사람은 괜히 ‘예민한’ 사람이 된다. 이런 걸 없애자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던 전 세대의 노력은 항상 진행형이어야 한다. 적폐청산이 유행이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우리 안에 체화되어 있는 독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으면 내 안의 독소를 보약이라 착각하게 된다. 이오덕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속에 남은 것은 내가 당연히 쓰고 있는 말들, 당연히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번에 될 리가 없고, 몇 사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 무직이 뮤직이 되고, 기타 등등이 기타리스트가 되고, 차렷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온 말인지 퀴즈에 나오게 되는 것. 그때쯤이면 ‘경주 핵발전소, 방폐장 없애기로’가 포털 메인뉴스로 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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