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파원 누가 나에게 기자 생활 중 직접 눈으로 본 장면 가운데 가장 충격을 받은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2006년 9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던 보수단체의 대규모 집회라고 말하겠다. ‘대한민국을 위한 비상구국기도회·국민대회’라는 이름의 이 집회에는 경찰 추산 5만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사학법 개정 반대와 전시작전통제권(작통권) 이양 협상 중단을 촉구했다. 집회에 참석한 인파가 흔들던 성조기 물결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제는 보수단체 집회에서 사람들이 성조기를 흔드는 모습을 봐도 시큰둥하지만 당시에는 큰 심리적인 충격을 받았다. 집회에는 전직 국방장관들도 참석해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라며 한국이 전시작전권을 넘겨받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전쟁이 아직은 휴전 상태이며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다는 현실을 모르지 않지만, 군인이 스스로 작전권을 행사하지 말자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습에는 어쩔 수 없이 당혹감을 느꼈다. 당시 집회를 주도한 단체였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재향군인회, 사학수호국민운동본부 등은 “우리는 한미연합사 해체를 결코 원하지 않으며 작통권의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내용을 영문으로 번역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에게 전달한다고도 했다. 일본에 온 지 한달도 되지 않아서 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일본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한반도 인근 해역으로 이동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유사’(有事) 사태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전쟁 상황을 염두에 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보도 내용은 대개 일본에 미칠 영향에 관한 이야기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국에 체류중인 일본인을 어떻게 대피시킬 것인지, 북한이 일본에 직접 보복공격을 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이다. 일본 정부는 칼빈슨호가 한반도에 접근하면 해상자위대와 공동작전을 하도록 교섭하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북한에 대한 견제뿐 아니라 동중국해 등에서 미군과의 공동작전을 통해서 중국 견제까지 노리겠다는 이야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반도 유사사태 때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서 숙원 사업인 납치 피해자 구출을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북한이 허용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납치 피해자들을 일본으로 데려갈 방법이 없지만, 전쟁이 나서 미군이 한반도에 상륙하면 미군의 도움을 받아서 납치 피해자들을 데려오겠다는 생각이다. 벌써부터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일본의 주판알 튕기기가 얄미워 보일 수 있지만 냉정하게 보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계산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과 일본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리저리 동맹관계로 묶여 있더라도 미국,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직접 피해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는 한국인과 북한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는 한반도다. 전쟁이 나면 가족과 친지를 잃을 수 있고 삶의 터전을 빼앗길 수 있는 사람들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이다. 한-미-일 공조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 존재한다. 미국과의 관계만 신성시하고 반미는 절대적으로 금기시하며 북한과의 대화는 거부하는 게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현명한 일일까.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때 정부 관계자들이 굳건한 한-미 공조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왠지 서글퍼진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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