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한반도 위기설’은 불안한 꼬투리가 있을 때마다 반복됐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사는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엔 위기설에 항시적으로 노출된 우리의 처지가 너무 곤궁하다. 특히, 이번 ‘한반도 4월 위기설’은 한국의 정치·경제적 체력이 약해졌을 때 주변 세력들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되새김질이 필요하다. 우선, 이전에는 주로 북핵 관련 협상이 난관에 부딪히거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등 북한에 변고가 있을 때 ‘북한 붕괴론’을 근거로 위기론이 등장했다. 그런데 이번 위기설은 ‘주연’과 ‘진앙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였다.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지난 8일 싱가포르를 출발하면서 한반도 방향으로 갑자기 경로를 변경한 것처럼 ‘거짓 발표’하면서 위기설이 촉발됐다. 물론, 북한 김일성 주석 생일인 4월15일 ‘태양절’에 북한이 핵실험 등을 할 것이란 전망은 많았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북한의 내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단골처럼 나와서 이번만 딱히 특별하다고 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반도 위기설이 급속하게 퍼지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반도 위기설을 방조했다. 되레 트럼프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국내 정치용으로 이를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동맹국 국민의 안위나 불안은 이들의 생각 속에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통령의 협상 전략을 좇아 ‘예측 불가능성’을 통해 상대방의 두려움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였다면 성공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북한이나 중국의 격렬했던 반응을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동맹국들도 이런 전략적 모호성의 칼끝이 자신들을 향하지 않을까 우려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트럼프 행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양치기 소년’ 전략의 약효는 오래가지 않는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정책이든 외교정책이든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별로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다. 가장 큰 외교자산인 신뢰를 잃어버리면 아무리 근육질을 자랑해도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뿐이다. 한반도 위기설의 ‘조연’을 꼽자면, 뭐니 뭐니 해도 일본이다. 한국 정부의 부재 상태를 최대한 활용하는 듯한 일본의 움직임은 ‘하이에나’였다. 일본 외무성이 누리집에 한국 체류 일본인들에게 한반도 정세를 주시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올리는가 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까지 직접 나서 위기론을 불지폈다. 미국 정부가 칼빈슨 항공모함 외에도 니미츠호 항모를 서태평양 해역에 추가 배치한다는 ‘오보’도 일본 쪽에서 나왔다. 정부와 언론이 마치 입을 맞춘 듯 거짓 정보를 흘려가며 한국의 위기를 고조시키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한반도 위기설의 또 하나의 조연은 미국 언론과 한국 언론들이다. <엔비시>(NBC) 방송이 지난 13일 미국이 대북 선제타격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장착한 구축함 2척을 한반도 인근 지역에 배치했다는 ‘오보’로 한반도 위기설은 극에 달했다. 미국 행정부에서 고의적으로 그릇된 정보를 기자에게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자신들의 보도가 어떤 파국을 야기할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을 해봤는지 묻고 싶다. 사실, 미국 언론만 나무랄 사정은 못 된다. 지난 열흘가량 한국의 각 신문 1면 제목과 방송 제목을 쭉 훑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한반도 위기설의 본질을 “미국과 한국 언론 호들갑의 상승작용”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지난 열흘 남짓, 우리는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는 너무나 엄중한 현실과 마주했다. 2017년 4월 위기설, 조연과 주연들을 잊지 말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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