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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조삼모사’ 치킨값 인상

등록 2017-04-27 18:31수정 2017-04-27 21:04

안재승
논설위원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 1위(매장 수 기준)인 비비큐(BBQ)가 다시 치킨값을 올리기로 했다.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한 지 한달여 만이다. 새달 초부터 인상될 예정인데, 메뉴에 따라 10% 안팎 오를 것으로 보인다. 경쟁업체들은 인상 계획이 없다고 하지만, 그동안의 관행을 볼 때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초 비비큐는 치킨값 9~10% 인상 방침을 발표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당시 비비큐는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산지 닭고기값이 급등하고 인건비와 물류비 등이 올라 8년 만에 치킨값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러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조류인플루엔자로 혼란한 틈을 타 가격을 인상하는 치킨업체에 대해서는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의뢰도 불사하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내놨다. 농식품부의 초동대처 실패가 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 사태를 불러왔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비비큐의 치킨값 인상 발표가 농식품부의 염장을 질렀던 것이다. 고강도 압박에 비비큐는 바로 백기를 들었다.

치킨. 한겨레 자료사진
치킨. 한겨레 자료사진
이처럼 서슬 퍼렇던 농식품부가 이번엔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비비큐는 치킨값 인상 이유로 “인건비·임차료의 지속적 상승과 과도한 배달앱 수수료 등 가맹점주들의 사정이 어렵다”고 밝혔다. 닭고기값 인상은 빠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번엔 조류인플루엔자 탓에 닭고기값이 올라 치킨값을 인상한다고 사실이 아닌 주장을 해 대응을 한 것”이라며 “다른 요인으로 인한 치킨값 인상은 농식품부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치킨업체들이 연간 단위로 생닭을 공급받으면서 조류인플루엔자를 핑계로 값을 올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다. 조류인플루엔자만 거론하지 않으면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 입장에선 치킨값 인상이라는 결과는 다를 게 없고 한달 동안 우롱당했다는 불쾌감마저 들게 됐다.

무엇보다 ‘조류인플루엔자 책임론’을 방어하려고 권한을 남용한 농식품부의 잘못이 크다. 국세청 세무조사는 탈세를 잡고 공정위 조사는 불공정거래를 시정하는 수단이지 물가 관리용이 아니다. 세무조사나 공정위 조사를 아무 데나 동원하는 것은 권위주의 정권이나 하던 짓이다. 가격 인상은 수급 조절과 유통구조 개선 같은 정책 수단으로 대응해야 한다. 나서야 할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한 농식품부 탓에 가격은 가격대로 오르고 소비자 혼란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까지 키운 꼴이 됐다.

비비큐는 이번 치킨값 인상의 이유로 가맹점주들의 어려움을 든 만큼 인상분을 가맹점주들에게 모두 돌려줘야 한다. 내수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본사와의 불평등한 관계 때문에 ‘자영업자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경영난이 심하다. 반면 지난해 교촌치킨·비비큐·비에이치씨(BHC)·굽네치킨 등 대형 프랜차이즈 본사는 경영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가맹점주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 동안 본사만 배를 불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 조사는 이럴 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맹점주들은 공정위가 정작 필요할 땐 보이지 않고 조사를 나와도 본사 편만 든다고 불평을 쏟아낸다.

유력 대선후보들 모두 대기업의 갑질을 뿌리 뽑겠다며 공정위의 권한 강화를 공약으로 내놨다. 하지만 권한 강화에 앞서 ‘우선 과제’가 있다. 경제적 약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정위를 개혁하는 일이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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