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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금지함을 금지하라 / 나효우

등록 2017-04-28 18:17수정 2017-04-28 21:19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사람마다 삶의 변곡점이 있기 마련이다. 내게 교육은 늘 관심있는 주제이면서 풀 수 없는 실타래와 같았다. 교육은 나를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일정한 선을 이탈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조여 매는 목줄이었다. 낑낑대고 벗어나려 할수록 목을 조이고 다리를 휘감고 놔주질 않는다.

그나마 교과서 이외의 책들을 통해 상상의 끄나풀을 핥으며 안위를 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엄혹한 시절에 386세대가 만날 수 있는 금서이면서 필독서들 중에는 파울루 프레이리의 ‘피억압자들의 교육학’이라는 부제가 달린 <페다고지>가 있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했다.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 문제제기식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은 그동안 나를 묶어놨던 기존 교육의 끈을 끊어내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프레이리의 나라 브라질에 가고 싶었다. 책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나고 싶었다. 나를 붙잡고 있는 끈은 이미 힘없이 낡아서 더 이상 가둘 수 없었다. 한번 사는 인생을 연습 삼아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다보스 포럼에 맞서서 2001년부터 해마다 1월에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의 근거지가 된 남미에 대해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몇해 지나지 않아 36시간의 긴 항로 끝에 드디어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행사장 인근에는 끝도 안 보이는 텐트들이 들어서 있었다. 청년 수만명이 모여서 하는 노래와 춤, 그리고 열띤 토론으로 열기가 장관이었다. 우드스톡 축제가 이랬을까. 청년들과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이 함께 토론하고 사랑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세계사회포럼에서 파울루 프레이리 강좌를 하는 곳은 어느 대학교 건물의 교실이었다. 건물을 찾아 헤매다 보니 시간보다 늦었지만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그러나 그도 잠시, 스페인어로 강좌를 진행하니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영어로 통역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냐고 물었다. 마침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 도와주겠다고 한다. 강좌가 진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떤 청년이 질문한다. “나는 억압당하기도 싫지만, 억압하는 것도 싫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나요?” 저 질문은 저도 하고 싶었다고 통역자에게 말을 하니 웃으면서 말한다. “저는 이 모임에 참여하려고 왔는데, 당신에게 통역을 하느라 억압을 당하고 있는 거죠.”

순간 당황해서 나는 괜찮으니 모임이 끝난 후에 정리해서 이야기만 해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스페인어를 할 수 있지만 당신만이 할 수 없으니 당신 또한 억압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억압을 할 수도 있고, 동시에 억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나를 둘러싼 사회만이 나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이들을 억압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내 생각을 상대에 맞게 표현하도록 노력할 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견이 옳다면 자존심을 세우지 않고 동의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지금 70대 나이의 세대를 가리켜 서구에서 68세대라고 한다. 2차대전의 전운이 사라지기 전에 발발한 베트남전쟁 참여에 반대하여 1968년 3월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한 전쟁반대 평화운동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68세대 운동은 “금지함을 금지하라”는 구호로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베트남전쟁을 겪었던 68세대가 그랬듯이 광주민주화항쟁을 경험했던 386세대를 넘어서 세월호의 아픔을 딛고 살아가는 밀레니엄 세대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형태의 억압을 벗어나서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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