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택
논설위원
돌이켜보면 모든 것은 말(馬)에서 시작됐다. 승마대회에서 촉발된 ‘나비의 날갯짓’이 대통령 파면·구속의 태풍을 몰고 왔다. 국정농단 사건의 한복판엔 문화체육관광부가 있었다. 농단에 저항한 장관은 면직되고 승마협회를 ‘감히’ 공정하게 감사한 국·과장은 ‘나쁜 사람’으로 찍혀 쫓겨났다. 그러나 부하 직원들은 블랙리스트 등 농단의 흔적을 폐기하라는 후임 장관의 지시를 거스르며 증거물을 모두 모아두었다.
대통령은 정윤회와 십상시의 국정농단 보고 문건을 지라시라 우기며 검찰을 시켜 유출사건으로 뒤집었지만, 나쁜 사람 축출공작은 끝내 감추지 못했다. 문체부 공무원을 서울 출장 보내면서까지 급조한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창립총회 회의록도 고스란히 직권남용의 증거로 남았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문체부 실무자들이 블랙리스트 실체를 밝혀내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자리를 내놓고 이제라도 비겁해지지 말자고 다짐을 하고” 했다고 밝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권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자세로 일했다는 그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모든 공무원은 헌법에 의해 신분을 보장받고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 검사는 여기에 더해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라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다른 공무원에 비해 직급을 높여준 만큼 책임도 크다.
그러나 현실의 검찰은 그 반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로 그간의 악명을 털어내는가 싶었으나 우병우 수사로 역시나 한계를 드러냈다. 피 흘리지 않고 살을 베어야 하는 셰익스피어의 샤일록도 아닌데 검찰의 칼은 제 썩은 부위를 도려내기는커녕 헛손질만 해댔다. 노련한 주방장 횟감 떠내듯 검찰 수뇌부나 현직 검사가 다칠 만한 부위는 철저히 피해가며 칼질한 티가 역력했다.
정윤회 문건 수사를 뒤집어 박-최 게이트를 결과적으로 방조한 검찰은 이번에도 그 본말전도의 전말은 파헤칠 생각조차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방치한 해양경찰에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지 못하게 해 결국 구속영장이 기각된 경위도, 우병우와 통화했다는 수뇌부도 피해갔다. 장시호가 증언한 삼성동 자택 돈도, 최씨 일가 재산 추적도 불발됐다. 화이트 리스트까지 만든 정치공작 수사도 실종 위기다. 정의·인권은커녕 소장 검사의 기개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병우의 검찰 농단에 부역해온 ‘김수남 검찰’의 태생적 한계다.
박-최 게이트의 나머지 반쪽과 우병우 비리까지 제대로 드러내려면 다시 특검이 필요하다. 이번엔 검찰과 이해관계, 친분관계에서 자유로운 팀으로 짜야 한다. 그런 연후에 제도를 손봐야 한다. 모든 대통령 후보가 검찰 개혁을 약속하고 있지만 낙관은 아직 이르다.
역대 정권에서 봤듯이 검찰은 개혁을 피해가는 여론전과 로비전에 능하다. 정권 초 캐비닛에서 꺼낸 파일로 ‘거악’을 사정의 제물로 올리면 여론이 박수 치고 정권도 검찰을 손보기가 어려워진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구악이면 금상첨화다. 정권의 개혁 의지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국회엔 검찰 출신 친검 의원들이 즐비하다. 검찰과 변호사 업무로도 얽혀 있는 이들이 상임위나 소위 길목에서 발목을 잡으면 개혁 입법은 물 건너가기 십상이다. 법안 밀어붙이는 의원에겐 검찰이 직접 칼날을 들이대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이래저래 임기 후반으로 가면 검찰의 칼은 다시 정권 심장부를 향하고 그때는 이미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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