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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북한이라는 재료 / 조기원

등록 2017-05-04 18:34수정 2017-05-04 21:09

조기원
도쿄 특파원

도쿄 특파원으로 일본에 온 뒤 한 달 남짓 동안 일본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듣거나 본 단어는 아마도 ‘북조선’(일본에서 북한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북조선 정세 긴박’, ‘미국 북조선 공격 시 한국 체류 일본인 구출 어떻게 하나’ 같은 기사들이 한 달 동안 뉴스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이 정도면 일본도 걱정이 되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산케이신문> 계열 <석간 후지> 등이 ‘한반도 유사시 난민 100만명’처럼 별다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쏟아낸 기사들은 제목만 봐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일본에서 북한 위협론을 연일 쏟아내는 데는 아베 신조 정부의 각종 발언과 대책이 큰 몫을 한다. 지난달 초에는 주한 일본대사관이 한국 체류 일본인들을 상대로 “한반도 정세에 주의하라”는 글을 누리집에 띄우고, 중순에는 내각관방(내각의 기획 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 누리집에 북한 미사일이 일본에 떨어졌을 때 대피 방법을 올렸다. 대피 방법은 실외에 있을 경우에는 튼튼해 보이는 건물 안으로 피하고, 집 안에 있을 때는 창문 옆을 피하라는 정도다. 일부 일본인들은 미사일이 일본에 떨어질 때 이 정도로 대비책이 되겠냐고 할 정도로 대책 자체로는 성기지만, 북한의 위협을 일본인들에게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최근에는 북한이 발사에 실패한 미사일을 이유로 도쿄 지하철과 일부 신칸센이 일시 운행중단 되는 일까지 있었으니, 일본인들은 북한 정세 위협론을 점점 피부로 느끼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이런 북한 위협론은 이제 최종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듯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의 헌법기념일인 3일 <요미우리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 2020년까지 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시해 합헌화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을 둘러싼 정세가 긴박해지는 중에 ‘(자위대가) 위헌일지 모르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목숨을 걸어달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고, 북한이 전쟁 중에 일본에 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는데 일본은 평화헌법에 묶여서 대비를 할 수 없다는 논리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실질적으로 군대이지만 이름은 군대가 아닌 자위대의 탄생 자체가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발발로 주일미군이 한국으로 가게 되자,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은 1950년 요시다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에게 “불법 소수자가 날뛸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경찰력을 강화해야 한다. 일본 정부에서 7만5천명에 달하는 국가경찰예비대를 설치하고, 그와 동시에 해상보안청이 현재 보유 중인 보안인력에 8천명을 증원하도록 인가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생긴 경찰예비대는 이후 자위대로 재탄생했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이 일본 보수파에게는 평화헌법을 개정할 수 있으며 자위대를 명실상부한 군대로 바꿀 수 있는 첫걸음을 뗄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북한 위협론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 보수에게도 전가의 보도다.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 같은 때늦은 주적론이나 색깔논쟁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고, 한국 보수에게는 표를 끌어모을 수 있는 손쉬운 재료다.

북한 정권이 핵을 개발하거나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북한의 군사력 강화 노선이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높이고 상대의 무장 강화를 정당화하는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에 더욱 반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순수한 안보 차원을 넘어서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재료로 이용하려는 한·일 양쪽의 세력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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