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가현이들’과 1만원

등록 2017-05-11 17:19수정 2017-05-11 20:55

김영희
논설위원

“어쩌다 보니 최저임금이 만원이 됐습니다. 이제 야간에 12시간씩 일 안해도 되겠죠. 폐기된 삼각김밥이나 학생식당 밥만 먹지 않아도 되겠죠.” 2013년 5월, 서울 시내 길바닥에 누워 알바연대가 벌인 ‘휴식시위’에서 나왔던 말이다. 당시엔 노동계 안에서도 ‘너무 과한 요구 아니냐’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4년이 흘러 이번 대선에선 모든 주요 후보가 최저시급 1만원을 약속했다. “우리도 꿈같다고 해요.”

청년들이 쏟아낸 헬조선, 탈조선, 리셋 같은 말엔 돌덩이처럼 꿈쩍 않는 현실에 대한 절망과 도피, 혐오가 짙게 배어 있다. 하지만 사실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끊임없이 외치고 부수는 목소리가 있다면.

다큐멘터리 영화 <가현이들>의 가현씨들.
다큐멘터리 영화 <가현이들>의 가현씨들.
윤가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가현이들>에는 알바연대·알바노조에서 활동해온 윤씨와 두 명의 이가현씨가 등장한다. 막내 가현씨를 알게 된 건 지난해다. 그는 ‘45초 햄버거’ 이슈화를 통해 세계 1위 패스트푸드업체 맥도날드의 위험한 작업 환경을 알리며 단체협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가톨릭대 법학과 12학번인 그는 기자가 꿈이었다. 2013년 기자회견에서 유니폼을 입고 맥도날드의 작업 환경을 증언한 뒤 1년 가까이 일하던 매장에서 잘렸다. 맥도날드는 노동강도가 높고 이직이 잦아 ‘알바계의 삼성’이라 불린다. “학교에서 배운 법은 늘 좋은 얼굴이었어요. 이 법이 분쟁을 이리 해결했다는 식. 전 잘리고 혼자 공부하며 배운 법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얼마 전 알바노조는 맥도날드의 교섭대표 노조가 됐다. 꿈같은 일이 또 하나 이뤄졌다. 올해부터 위원장을 맡은 가현씨는 “나 같던 사람들의 손을 잡는 활동가로 사는 게 이젠 희망”이라고 말한다.

사회에선 여전히 ‘알바생’, 하지만 아르바이트는 용돈이 아닌 생계를 위한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 알바노조엔 주 4~5일씩 근무하는 30~50대 조합원도 늘고 있다. 주 40시간 미만 단시간 근로나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를 하는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알바’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따르면 192만명이고 실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점주의 전화 한 통에 부당해고돼도 노동청 진정 외엔 길이 없고, 그나마도 ‘적당히 받고 타협’하길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종용받기 일쑤다. 한국 사회 저임금 노동자의 가장 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최저시급 1만원은 ‘숨통’을 틔워주는 일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자영업자 70%가 1인 또는 가족고용이라 최저시급 1만원의 영향을 직접 받는 건 30% 정도다. 이도 다수가 대기업에 편입된 프랜차이즈 점포라 원하청 불공정거래와 가맹점에 대한 갑질 구조 등을 바꾼다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생계가 가능한 일자리가 생긴다면 제 살 깎아먹기 식의 창업경쟁 악순환도 완화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가현이들>에 나오는 알바노조의 시위 모습.
다큐멘터리 영화 <가현이들>에 나오는 알바노조의 시위 모습.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노동이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하는 것이 노동문제를 대하는 근본 시각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지난 10년간 늘어난 실업자 절반이 청년이고 청년 신규 취업자 중 60% 이상이 비정규직인 현실에서 이건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아이들 삶의 문제다. 최저시급 1만원은 그 출발점일 터. 2020년까지 도입을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내달 말 심의의결할 내년도 최저임금에서 실제 두자릿수 인상을 이뤄낼지는 새 정부 노동정책의 향방을 가늠하는 첫 시금석이다. 영화 마지막, 가현이들은 말한다. “나는 여태껏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알바 주제에, 기간제 주제에, 능력도 없는 주제에라며…. 내가 몰라왔던, 포기했던 나의 권리는 나의 삶이었다.”

do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