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초청 결정은 중국이 한 것이다.” 14~1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 포럼’에 싱가포르 대표단으로 참석했던 로런스 웡 국가개발부 장관의 이야기다. 싱가포르는 정상급 인사가 참석하지 않았다. 웡 장관은 ‘중국이 안 불렀으니 안 온 것일 뿐, 소외된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한 셈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한국 정부도 “초청장이 오지 않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중국 정부도 싸늘했다. 한달 전만 해도,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서 참석하겠다면 가능하겠는가?’라고 묻자, 외교부 대변인은 “가정적인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고만 했다. 중국 외교부 설명을 들어보면, 중국은 이런 행사를 할 때 참석이 확정돼야 초청장을 발송한다고 한다. 우선 “참석 여부를 답장 바랍니다”며 초청장을 보낸 뒤, 답장으로 참석 여부를 파악하는 방식과는 좀 다르다. 초청했는데 오지 않는 불상사는 없으니, 체면을 중시하는 ‘동양적 문화배경’이라고도 설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이번 일대일로 회의와 관련해 오갔던 ‘대화’들이 흥미롭다. 대선 이튿날인 10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초청 여부에 대해, “일대일로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협력 제안”이라며 문호가 열렸음을 시사했다. 하루 뒤 11일 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높이 평가하며 “발전과 번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시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대표단 파견을 요청했다는 게 지난 13~16일 대표단장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던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야기다. 비유하자면, 큰 잔치를 주최하는 이웃에게 “좋은 일 있다면서요?”라며 관심을 표시했더니, 오겠다는 뜻으로 이해한 그 집 주인이 “한번 직접 와서 보실래요?”라며 초청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무엇을 ‘동양적’이라 한 건지 알 것도 같다. 초청장부터 보내놓고 누가 오려나 기다리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당장 대중국 외교 채널의 회복이 급한 우리는 ‘일대일로 포럼’ 자체는 큰 관심이 없다. 관련 사업 상당수가 유럽·중앙아·동남아 주변국들의 물류 인프라, 그리고 그곳까지 이어지는 중국 서부 내륙의 인프라를 짓는 데 집중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과 맞닿은 중국 동북지방도 분명 일대일로 프로젝트 대상 지역 중 하나다. 특히 이번 회의에선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극동지방 개발을 위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전체 1천억위안 규모의 중-러 지역협력발전투자기금을 단계적으로 조성해 일대일로 사업으로 추진한다는 발표도 나왔다. 박근혜 정부는 일대일로 프로젝트 금융 분야의 가장 중요한 축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했지만, 홍기택 부총재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연 사퇴·잠적하면서 많은 기회를 잃었다. 앞서 2015년 7월엔 기획재정부가 일대일로 및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대응하기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를 만든다고 법석을 떨었지만, 총선 출마를 앞둔 최경환 당시 장관이 그해 말 사퇴하는 등의 과정 속에 결국 흐지부지됐다. 싱가포르 얘기로 돌아오자. 싱가포르는 근래 중국과 큰 갈등이 없다. 다만 정상 방문에 따른 부대 절차와 관련해 의견차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쪽이 보다 풍성한 결실이 있는 정상 방문을 바라고 내놓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한국의 새 정부는 대표단과 특사단의 잇따른 방중으로 일단 대중국관계 설정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 박근혜 정부가 남긴 짐이 작지 않은데도 말이다. 언젠가는 아시아인프라은행에서 5번째 많은 지분을 가진 공여국으로서의 입장과 그 몫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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