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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권력의지와 책임윤리 / 고명섭

등록 2017-05-30 16:30수정 2017-05-30 20:46

고명섭
논설위원

권력의지라는 말의 철학적 기원은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한 여러 저작에서 권력의지 사상을 설파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권력의지가 있다는 것이 니체의 관점이다. 권력의지는 생명의 본질이자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다. 권력의지가 강할수록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니체에게 권력의지는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니체가 말하는 권력의지가 정치적인 영역으로 옮겨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니체와 달리 막스 베버는 권력의지를 의심 어린 눈으로 보았다. 이제는 고전이 된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문에서 베버는 ‘권력본능’이라는 말로 이 문제를 숙고한다. 베버는 권력본능이라는 것이 ‘정치인의 정상적인 자질’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권력본능에 따른 권력추구는 권력도취로 빠지기 쉽고, 권력도취가 정치의 목표가 되면 그 순간 ‘정치에 대한 배반’이 시작된다. 베버에게 정치란 ‘악마적인 힘’과 관계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것은 권력의지가 아니라 다른 자질, 이를테면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이다. 좋은 정치인이 되려면 이 세 가지 자질이 필요하다. 베버는 정치인의 자질을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신념윤리란 자신의 신념을 마지막까지 추구하는 태도이며, 책임윤리란 신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결과를 예상하고 그 결과까지 감당하는 태도다. 베버가 정치인의 자질로서 최종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이 책임윤리다. 책임윤리가 결여된 정치는 신념이란 이름으로 악마적 힘을 풀어놓거나 권력도취의 허영심에 빠져 정치 자체를 망친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은 권력의지에 대한 책임윤리의 승리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을 읽어보면, 우리 정치사의 숱한 권력의지의 화신들과는 종류가 다른 인간을 만나게 된다. 앞에 서서 조명을 받기보다 뒤에서 조용히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 자서전 속 주인공의 모습이다. 문재인은 정치가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그래서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되풀이해서 고백한다. 왜 맞지 않는 옷일까. 정치라는 것이 베버가 말하는 악마적 힘과 관계 맺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악마를 다스리지 못하면 재앙이 닥치고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된다. 정치 지도자는 그 결과를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책임윤리는 두려움을 동반한다. 이 두려움을 생각하면 정치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는 모습이 이해가 된다. 그렇게 정치 밖으로 빠져나가던 사람을 돌려세운 것이 노무현이라는 ‘솔메이트’의 죽음이 준 충격이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자서전의 이 마지막 말은 문재인의 정치가 권력의지라는 이름의 정치적 야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운명이 내준 숙제를 끝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려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베버가 말하는 ‘직업(Beruf)으로서의 정치’는 ‘소명(Beruf)으로서의 정치’이기도 하다. 소명 곧 부름 받음이 없는 정치는 권력의 위광을 좇는 자족적 투쟁이거나 정치로 먹고사는 폼 나는 자영업에 지나지 않는다. 소명을 받아안고 그것을 어떻게든 완수하겠다는 결의, 이것이 결국은 정치의 요체다. 책임윤리 없는 권력의지는 우리 정치사의 뒷방으로 사라져야 한다. 나르시시즘에 젖은 무책임한 정치인들이 남긴 악폐가 너무 크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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