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승
논설위원
고 강기봉 소방관은 지난해 10월 태풍 ‘차바’로 침수된 울산 회야댐 인근에서 주민들을 구조하다가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에 순직했다. “고립된 차 안에 사람 2명이 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강 소방관은 범람한 강물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다음날 숨진 채 발견됐다. 강 소방관은 부상자를 응급치료하는 구급대원이었는데, 구조대원이 부족해 대신 구조작업에 나섰다가 그만 목숨을 잃었다. 소방대원의 임무는 화재진압, 인명구조, 구급활동으로 나뉜다. 군인에 비유하자면 의무병이 전투에 투입됐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업무수행 중 순직한 소방관이 60명, 부상을 당한 소방관은 3241명에 이른다. 소방관이 사고를 당할 때마다 인력을 늘리고 장비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지만 그때뿐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심이 시들해진다.
2016년 11월30일 새벽 큰불이 난 대구 서문시장에서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다. 사진 대구시 제공
지난해 말 기준 소방공무원 수는 4만4293명이다. 소방기본법은 소방서별로 최소한의 인력 배치 기준을 정해놨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현재 1만9254명이 부족하다. 소방관은 현장 공무원 중 3교대 근무가 가장 늦게 도입됐는데, 그마저 인력 증원이 뒷받침되지 않아 여전히 2조2교대나 3조2교대로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사무실과 소방차만 있고 상주 소방관이 없는 ‘무인 지역대’도 전국에 132곳이나 된다.
정부가 7일 국회에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올해 1만2천명의 공무원을 추가로 채용한다는 계획이 들어 있다. 소방관 1500명, 경찰 1500명, 사회복지공무원 1500명, 가축질병방역관 1500명, 집배원 100명 등이다. 모두 국민 안전과 민생에 직결된 분야인데도 인력 부족 탓에 과로와 순직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직종이다.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20일이 넘도록 자유한국당의 거부로 심사에 착수조차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포퓰리즘 추경”이라고 공격한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26일 당 비상대책회의에서 “세금으로 공무원을 늘리고 ‘일회성 알바 추경’으로 공공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자유한국당의 참여를 기다리자며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두 당도 공무원 증원에 부정적 입장이다.
일반행정직 증원도 아니고 소방·경찰·복지 등 인력 충원이 시급한 현장 공무원을 일부라도 앞당겨 뽑자는 것을 포퓰리즘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억지 주장이다. 국가 예산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세금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청년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 야당은 명분 없는 반대를 접고 추경안 심사에 참여해야 한다.
하나 더.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한 일명 ‘소방관 눈물 닦아주기 법’이 1년 가까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소방관들의 오랜 염원인 국가직 전환을 담은 법안이다. 현재 전체 소방공무원 중 단 1%만이 중앙소방본부 소속 국가직이고, 나머지 99%는 자치단체 소속 지방직이다. 지자체의 예산 부족 탓에 소방관들이 고질적인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소방관만이 아니라 국민 안전을 위해서도 국가직 전환이 필요하다. 법안 통과를 바라는 릴레이 캠페인 ‘소방관 고(GO) 챌린지’가 3월부터 이어지고 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본떠 각계 인사들이 밀가루를 뒤집어쓰며 소방관들을 응원한다. 가수 이승환, 배우 정우성, 유지태, 류준열도 동참했다.
국민의 아픔을 헤아리고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야말로 국회가 할 일이다. 이제 정쟁을 중단하고 ‘민생 국회’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jsahn@hani.co.kr
▶ 관련 기사 : “추경안 논의 거부하는 자유한국당 너무한다”…울먹인 우원식
▶ 관련 기사 : ‘일자리 추경’ 절박성 호소한 대통령의 시정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