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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신촌서당 / 피터 김용진

등록 2017-06-30 18:45수정 2017-06-30 20:32

피터 김용진
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경주에서 ‘신촌서당’을 ‘또’ 준비하고 있다. 불국사 바로 아래. 아직은 공사 중인데 입구에 신촌서당 입간판을 놓았더니 서예를 하는 곳이냐 묻는 분들이 많다. ‘고전을 읽고 토론을 하고, 기타로 음악을 배우는 곳’이라고 설명을 하면 그런 게 여기서 잘되겠냐 진심으로 걱정하며 ‘장사가 잘돼야 할 텐데’ 하며 지나가신다. 원래 신촌서당은 서울 서대문구의 신촌동에 있어야 맞겠지만 어디든 새로운 마을이라고 생각하니 불국사 아래 이곳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고전읽기모임’은 음악 외에 내 삶을 뒤흔든 영역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신촌에서 ‘작은대학’이라는 곳을 다닌 적이 있다. 이 학교는 1991년 신촌지역 대학 선생님들이 모여 만든 고전읽기 학교였는데, 직업교육장이 되어버린 학교 교육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대학이었다. 90년대 초에도 이미 대학은 취업사관학교였던 거다. 작은대학에서는 1년 동안 20권의 인문/사회 분야의 고전을 읽고 토론을 했는데, 나는 이 학교에서 처음으로 읽고, 쓰고, 대화하는 재미를 배웠다.

1년은 금방 지나갔고, 그게 아쉬웠던 동기생 몇 명이 장소를 옮겨 선생님을 섭외해 ‘생명과 죽음’이라는 비장한 이름의 고전읽기모임을 만들었다. 그 시간이 이어지고 구성원들이 들고 나면서 지금의 신촌서당 고전읽기모임이 되었다.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는 모임을 10년 넘게 이어가면서 음악을 하고 글을 쓰며, 배우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강해졌다. 정약전 선생이 쓴 <자산어보>를 읽고 엠티처럼 갔던 흑산도에서 그분이 세운 ‘복성재’라는 서당을 보고 다음에 모임의 공간을 만들면 ‘서당’이라는 이름을 붙여야겠다 농담처럼 말했던 것이 진담이 되어 자연스럽게 모임 장소는 ‘서당’이라 불리게 되었다.

고전읽기모임을 계속하면서 나에게는 여러 변화가 생겼지만 첫 번째는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나의 궁금증을 질문으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고 빨리 답을 찾아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고 우리는 매번 그렇게 만나 똑같은 질문을 시대에 따라 달리하고 있는 책들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잡담처럼 긴 이야기들을 웃고 울고 때로는 긴 침묵 속에서 끌고 갔다. 각자의 답은 달랐다. 답을 찾는 건 결국 각자의 몫이었고 그 길에 같은 고민을 가진 동료들이 있을 뿐이었다. 질문은 많다. 답은 없다. 답은 여러 개이기도 하고 때로는 변한다. 그러니 지금 내 생각이 중요하고, 아직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당신의 말도 중요하게 듣게 되는 거다.

도대체 이런 시간을 흘러 살면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고집 부리며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돌아보면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인간성과 친절함이다. 오랜 기간 살아남아 전해진 책 속에는 그런 고민이 힘차게 담겨 있다. 당신은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 한 사람이며 타인도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만큼 친절해야 한다는 것. 아마도 그 연습공간이 ‘신촌서당’이 아니었을까.

요즘 서울의 신촌서당에서 읽는 목록에 큰 카테고리가 하나 추가되었다. 바로 ‘탈핵’이다. 토함산 너머 10킬로미터 거리에 아직 멈추지 않은 낡은 핵발전소가 있다. 새로 건설 중인 발전소들은 공론화를 위해 잠시 멈추었다. 그 공론화라는 게 바로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일이 아닌가. 나는 어떻게 인간성과 친절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또’ 서당을 여기에 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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