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특파원 시노즈카 다카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일본총영사가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강제연행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시노즈카 총영사 망언의 배경에는 ‘위안부 강제연행의 증거는 없다’는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시노즈카 총영사가 애틀랜타 현지 방송인 <더블유에이비이>(WABE)와 한 인터뷰를 보면 직접적으로 “매춘부”(prostitute)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일본 정부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성노예 20만명이 강제로 동원됐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다. 심지어 한국 정부조차 증거를 찾지 못했다. (위안부는) 20만명도 아니고, 성노예도 아니며, 강제동원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매춘부’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았다 뿐이지, 하고자 하는 말은 같은 이야기다. 시노즈카 총영사의 발언은 극단적이지만, 근저에 깔린 생각은 일본 정부의 기본 견해와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아베 정부는 1차 내각 때인 2007년 “정부가(고노담화 발표 전까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각의결정(한국의 국무회의 의결에 해당)했다. 고노담화에는 “(종군위안부는)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다”라고 되어 있다. 아베 정부는 ‘고노담화가 인정한 강제성은 강제연행이 아니다. 일본군이 직접 인간사냥을 하듯 여성들을 끌고 갔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노예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른바 강제연행의 증거가 전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최근 일본 내각관방(내각 주요 정책의 기획·입안·조정을 담당하는 기관)은 일본 국립공문서관이 보관하고 있던 위안부 관련 공문서 19건, 182점을 공식적으로 수령했다. 이 문서는 태평양전쟁 뒤 열린 도쿄재판, B·C급 전범재판 기록의 일부로 일본 법무성이 수집한 자료다. 이 중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했던 네덜란드가 진행한 전범재판인 ‘바타비아(자카르타의 옛 명칭) 재판 25호 사건’ 기록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해군 소속 인도네시아 특별경찰대 대장이 전후 일본 법무성 관계자에게 “200명 정도의 부녀를 위안부로 오쿠야마 부대의 명령에 따라 발리섬에 데리고 갔다”고 증언한 게 나온다. 역시 네덜란드가 진행한 ‘폰티아낙 재판 13호 사건’의 판결문에는 “다수의 부녀가 난폭한 수단으로 위협당했고 강요당했다”고 적혀 있다. 바타비아 재판 기록에는 “(피해 여성들이) 어느 일요일 오전에는 18~20명 정도를 상대하게 했고, 밤에도 일이 있었다. 월요일 아침에는 여성 몇명은 일어나지도 걷지도 못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아베 정부는 지난달 27일 각의에서 이 문서들이 “이른바 종군위안부 관련 자료로서는 처음으로 내각관방에 제출됐다”고 각의결정했다. 일본 시민단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의 고바야시 히사토모는 “이 문서들은 법무성에서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 정부가 내각관방에 제출하지 않았으니 증거 문서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 내각관방에 제출됐다는 것은 일본 정부가 더이상 강제연행을 부정하기 어렵게 됐다는 획기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가 여성의 인권에 대한 침해이고 범죄라는 본질은 지워지고, 외교교섭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은 이번 문서 내각관방 제출 뒤 성명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국제법과 국내법을 위반하는 중대한 인권침해라는 것을 인정하고 하루빨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다시 한번 요구한다”고 밝혔다. 같은 생각이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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