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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가와사키시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다 / 조기원

등록 2017-07-27 18:33수정 2017-07-27 20:36

조기원
도쿄특파원

‘드디어 본격적인 헤이트 스피치를 보게 되는구나.’

이달 중순 지인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가와사키시에서 헤이트 스피치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쿄에서 전철로 40분쯤 떨어진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는 재일동포들이 많이 사는 도시로 ‘뉴커머’(1980년대 이후 들어온 한국인)가 많이 사는 도쿄 신오쿠보와 함께 지난해 혐한 시위의 주요 무대가 됐던 곳이다. 지난해 일본 정부에서 처벌 규정이 없는 이념법이지만 헤이트 스피치 방지법을 제정한 이래로 헤이트 스피치가 열리지 않고 있었다. 소식을 전해준 한국인 교수는 재일동포들이 염려하고 있고 일본 시민들이 반대 집회를 열 계획이라는 소식을 전해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난 16일 헤이트 스피치가 예정된 가와사키시 평화공원으로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날 헤이트 스피치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오전 9시30분께 평화공원에 도착해 보니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공원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일본의 차별 문제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독립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를 취재하다가 경찰에 연행된 경력이 있는 사진가 시마자키 로디가 현장에서 취재하고 있었다. 일본 각지에서 몰려온 시민들이 인도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 앞뒤로 빠르게 이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오전 11시께 헤이트 스피치 집회를 신고한 이들이 나타났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이들에게 맞서기 위해 몰려갔을 때는 이미 이들은 물러난 뒤였다. 선두에 선 시민들이 막아서자 헤이트 스피치를 기획한 극우단체 인사들은 채 몇 미터를 전진하지도 못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헤이트 스피치를 하러 온 이들은 펼침막을 펼쳐 들었지만, 이들이 외치는 소리는 반대하는 시민들 목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로디의 사진기에 찍힌 사진을 확대해 보고서야 이들이 “일본의 주권을 지켜라” 같은 말을 쓴 펼침막을 들었다는 사실을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헤이트 스피치 현장을 제대로 보지 못해 다소 허탈했지만 마음의 위로를 얻은 날이었다.

헤이트 스피치 방지법 제정 이후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는 교묘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법에 직접 저촉될 수 있는 노골적인 말은 공공장소에서 되도록 내뱉지 않는 대신 “반일 세력이 일본인을 차별한다”는 해괴한 표현을 동원하는 식이다. 지난 3월 도쿄와이엠시에이(YMCA)에서 ‘세계 위안부 박물관’이 연 회의를 확성기를 동원해 방해한 일본인들도 “위안부는 날조” 같은 노골적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우리 할아버지가 그런 심한 일을 했다고 (일본인이) 말하다니 부끄럽지 않으냐. 북한이나 한국으로 가버려라”라고 말했다. 법에 명백히 저촉될 만한 발언을 공공장소에서 내뱉는 것은 회피하는 성향을 보인다.

가와사키시를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로 보이는 집회를 원천적으로 허가하지 않는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면 노골적 헤이트 스피치는 더욱 줄어들 듯 보인다.

하지만 헤이트 스피치를 법과 제도만으로 완전히 막기는 쉽지 않다. 가와사키시에서 헤이트 스피치를 한 이들도 관청에는 헤이트 스피치는 하지 않겠다고 신고했다. 타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흐르는 사회 분위기와 이를 이용하는 세력이 있는 한 헤이트 스피치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한여름 무더위에서 공원을 지켰던 시민들의 양심이 결국은 헤이트 스피치, 그리고 타인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방패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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