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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백악관에 물어봐라” / 이용인

등록 2017-08-03 18:15수정 2017-08-03 20:48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에서 1년6개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6개월여 동안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하다 보니 두 행정부의 너무 다른 언론 대응에 놀라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에선 국무부나 국방부에 현안을 물어보면 “백악관에 물어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오바마 행정부에선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는 같은 부처의 같은 담당자한테 서로 다른 답변을 듣게 된다.

언론 대응은 국가의 조직적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행정부 내부 논의를 거쳐 ‘프레스 가이던스’(PG·피지)라는 언론 대응 지침을 만들게 된다. 언론의 문의에 모든 부처에서 조율된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모범답안을 작성해 두는 것이다.

“백악관에 물어보라”는 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일선 부처의 권한이 크지 않아 백악관 눈치만 본다는 뜻이다. 적극적으로 언론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정부의 조직적인 팀플레이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백악관과 일선 부처가 내놓는 입장이 종종 엇박자를 보인다.

우리 정부의 지난달 17일 대북 군사당국회담 및 적십자회담 제안에 대해 국무부와 백악관의 반응은 비슷한 듯 달랐다. 국무부는 “한국 정부에 문의해 달라”고 했다. 한국 정부와 조율해 나온 중립적 표현이었다. 백악관은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대화할 조건이 안 됐다고 과거에 말했다’는 다소 비딱한 평가를 더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어느 시점에” 북한과 대화를 하고 싶다며 분위기를 띄웠지만, 이어진 백악관 브리핑에선 북한에 대해 “모든 옵션이 열려 있다”며 몇달째 똑같은 ‘피지’만 반복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 수장은 북한 정권 교체론 등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까지 내뱉는다. 이쯤 되면 ‘봉숭아 학당’이 따로 없다.

자신들이 최우선 정책 순위라고 강조하는 대북 정책조차 조율된 목소리가 없다면 행정부는 기능이 정지된 거나 마찬가지다. 국무부 등 일선 부처와 백악관이 ‘따로 논다’는 관측은 워싱턴 외교가에서 오래전부터 떠돌았다.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미국이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는 얘기는 트럼프 행정부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관전평을 내놓았다.

시스템 붕괴는 트럼프의 ‘토사구팽’ 용인술 탓이 크다. 트럼프가 지난 2월 삼고초려 끝에 모셔 오다시피 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의 신임을 잃었다는 평가가 파다하다. 상급자에게 쓴소리를 잘하는 대쪽 군인이라더니 별거 없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엑손모빌 최고경영자였던 틸러슨 장관은 최근 경질설이 나돌았고, 군인 중의 군인이라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현안에 대한 언급을 아낀 채 2선으로 물러나 있다. 그들의 화려한 경험은 트럼프의 트위터에 짓눌려 있다.

한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섰어도 트럼프 행정부의 난맥상 앞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는 좀더 솜씨를 발휘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오바마 행정부 때처럼 국무부나 백악관 실무자들과 조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용에 따라 대통령부터 실무자까지 트럼프 행정부에 ‘올 코트 프레싱’을 해야 한다.

대북 군사공격을 할지도 모른다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을 경계는 해야겠지만, 이런 우려가 극단으로 흘러 ‘트럼프 포비아(공포)’에 사로잡혀 있다가는 반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아니, 수세적 태도로는 한반도 긴장 상황을 관리조차 못할 수 있다. ‘워싱턴발 한반도 위기설’을 열심히 퍼나르며 공포감을 부채질하는 보수진영의 노림수도 그런 덫에 가둬놓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련한 결기’가 필요한 때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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