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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독서하는 여행자들 / 나효우

등록 2017-08-18 18:00수정 2017-08-18 21:46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몇해 전에 어느 지방자치단체장과 일본 연수를 간 적이 있다. 공항에 내리니 갑자기 내린 폭설로 모든 차량이 걸음마였다. 평소 같으면 벌써 숙소에 도착할 시간에 공항청사를 얼마 벗어나지 못했으니 하얀 눈발을 보면서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런데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단체장이 뒷자리에 놓인 가방을 달라고 한다. 혹여나 괜한 짜증을 내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는데 그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함께 연수에 참가했던 이들도 모두 저마다 책을 꺼내 보는 모습이 독서실에 온 듯 평온했다.

얼마 전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생활시간 변화’에 따르면 우리나라 10살 이상 국민은 평일 기준 티브이 시청으로 하루 1시간53분을 보내지만, 독서 시간은 6분에 불과하다. 1년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다는 사람이 3명 중 1명이라고 하고, 한국인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앱 사용 시간이 독서 시간보다 20배 길다고 한다. 출퇴근 시간 전철 안에서 책을 보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물론 전자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참에 책을 읽는 여행을 제안하고 싶다. 중국 작가 잔홍즈는 그의 저서인 <여행과 독서>에서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다”라고 했다. 여행을 하면서 책 한두권을 들고 가서 기차 안이든 비행기 안에서든 보면 어떨까 싶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몇 페이지라도 보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최근 방송에는 다양한 테마여행 프로그램이 많다. 맛집을 찾아다니는 먹방여행에서부터 현지에 음식점을 열기도 하고 유명한 연예인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즐겨 봤던 피디들의 세계여행 이야기에서부터 잡학 박사들의 국내여행 이야기, 최근에는 외국인 친구들의 한국 방문기도 흥미롭다. 기왕 이렇게 다양한 테마여행을 제작한다면 책의 소재를 따라다니는 ‘책’ 테마여행도 있으면 좋겠다 싶다.

국내여행을 하다보면 책과 관련된 재미난 소재를 많이 볼 수 있다. 얼마 전 문을 연 경기도 고양시 한양문고 마두점은 여행 콘텐츠 플랫폼 ‘트래북스’(travooks)를 시작했다. 요즘 중고서점들이 어려운데 여행전문 서점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우연찮게 지인의 안내로 충북 괴산 ‘숲속작은책방’을 방문했는데 이곳은 작고 아름다운 책방과 이층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북스테이를 한다.

바닷가가 보이는 전북 고창군 해리면에 있는 ‘책마을 해리’는 오래된 폐교를 새롭게 바꾸면서 3만권이 넘는 책을 담은 도서관으로 꾸몄다. 마을버스도 없는 이곳에 해마다 6천여명이 찾는다. 스웨덴 공공도서관은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스톡홀름 북부에 있는 웁살라대학교는 노벨상 수상자 6명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한데 대학 도서관은 지역주민들에게 개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자가 여권을 보여주면 마음껏 책을 빌릴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어떤 여행자는 여행할 때마다 책을 두세권 들고 가서 다 읽고 나면 그곳에 기증하고 온다.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출판업계를 생각해서라도 우리 모두 출퇴근할 때 여행하는 기분으로 책을 들고 출근하면 어떨까 싶다.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자’는 욜로족처럼 독서하는 여행자들 ‘독서여’족이 되어보는 것,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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