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작년 4월, 우리는 구마모토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행이라는 게 흔한 시절이지만 떠날 기회가 많지는 않아서 가고 싶은 곳을 고르고 고른지라 기대가 컸다. 구마모토는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5년간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며 살던 곳이고 그의 소설 <풀베개>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곳들을 ‘풀베개길’로 만들어놓았다는데, 그 길을 걸어볼 계획이었다. 덤으로 일본의 3대 성이라는, 임진왜란 때 잡혀온 조선 기술자들이 지었다는 구마모토성에도 들어가보고. 비행기표를 예매하려는데 우리가 잡아놓은 여행 기간 중 공연이 생겨서 여행을 2주 미루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구마모토에 지진이 났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최고인 규모 7.3이었다. 피해는 컸고 사망자도 다수 발생했다. 구마모토성의 망루 하나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다른 쪽도 돌담이 무너졌다고 했다.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그 뒤 구마모토는 여행 목록에서 지워졌다. 그렇게 1년이 넘게 지났는데, 내가 작곡과 고전 읽기 수업을 하고 있는 신촌의 한 학교에서 학생 12명이 구마모토에 간다고 했다. 학생들은 재난 이후, 지역을 방문해 재난을 겪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기록을 남긴다고 했고, 그 기록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데 내게 도움을 부탁했다. 다시 나에게 구마모토가 떠오르는 순간. 풀베개길, 구마모토성 그리고 지진. 관광이 지역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마모토는 작년 4월 대지진 이후 여행객이 줄어 오랜 침체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이에 전국적으로 모인 성금으로 기금을 조성해서 부흥프로그램을 1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구마모토의 초청으로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제 막 경주에 살기 시작한 나도 지난봄, 생전 처음 지진을 겪었다. 규모 3.2의 비교적 약한(?) 지진이었지만 충격은 상당했다. 지진이 소리와 함께 온다는 것은 많이 읽고 들어 알고 있었는데 막상 그 소리를 들으니 공포심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쿵’ 소리가 나고 집이 흔들렸다. 나의 이야기는 경주에서 해야 할 것 같았다. 프로그램 진행자에게 제안해 구마모토에 가기 전에 경주에서 사전 프로그램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경주에서 지진을 경험한 사람들을 먼저 만나보면 구마모토에 가서도 비교할 대상이 생기고 무엇보다 이곳도 ‘부흥’이 필요한데 그런 움직임이 있는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히 구마모토에서 경주 방문 비용까지 지원을 해주게 되어서 12명이 경주에 와 2박3일을 보냈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많았는데, 많은 사람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재난 대책을 책임진 사람들은 ‘솔직히’ 해줄 말이 없다고 했고, 경주 지진으로 타격을 받은 숙박업소들은 왜 다시 지진 이야기를 꺼내, 안 그래도 침체되어 있는 지역경제에 도움되지 않는 일을 하냐고 했다.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은 고립감의 골이 깊어 짧은 일정으로 잠시 만나기에는 미안했다. 학생들은 수학여행의 대명사였던 경주 불국사 아래 유스호스텔에 묵으며 경주 시의원, 경주 지진 후 이야기를 모은 책 <현관 앞 생존배낭> 편집자들, 경주가 좋아 이곳에 5년째 정착해 살고 있는, 일본에서 온 문화재 연구자를 만나 재난 이후 삶의 변화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더욱더 다른 곳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친절했던 유스호스텔의 직원은 경주를 떠나는 학생들에게 부탁했다. “서울 가면 친구들에게 경주는 안전하다고 이야기 좀 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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