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지리산 산내면에 다녀왔다. 종종 강연이나 공연으로, 여름휴가를 위해 들르던 곳인데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늘 멀게 느껴지던 곳이 경주에서 출발하니 시간도 여유롭고 풍경도 더 좋아 보였다. 산내면에 귀촌해 살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평소 자신이 살아보고 싶었던 삶의 모습을 토대로 작은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고,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지리산 이음포럼’이라는 행사가 대표적이다. 매년 2박3일간 진행되는데 공연도 보고 곳곳을 산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하루 종일 이야기를 나눈다. 이 행사에 이번에는 120여명의 청년들이 참석했다. 모두 어떤 ‘전환’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나는 10여명의 청년과 오전에는 예술로 살아가는 것과 ‘일상예술’의 역할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후에는 간단한 포크송을 만들어보았다. 이전에도 ‘일상예술’이 주제인 자리에 여러 번 참석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매번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뭔가 어긋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고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일상예술이라는 말에는 어떤 오해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상예술’이라는 말을 쓰고 전할 때 우리는 일상에서 예술적인 ‘꺼리’를 찾아 틈틈이 그것을 갈고닦으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어요. 그러니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굳이 삶의 방향을 바꾸지 않더라도. 꾸준히 한다면.” 이건 내가 음악을 만들고 독립잡지를 만들면서 자주 들었던 말과 비슷하다. 이왕이면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일상을 만들어 놓고), 그러고 나서 네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은 취미로(일상예술로) 틈틈이 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겠냐 하는 말이다. 그래 맞다. 결국은 안정된 직장과 예술적인 삶을 동시에 잡고 싶은 현대인들이 ‘일상예술’이라는 돌파구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틈틈이 해서는 아무것도 마무리되지 않고 더군다나 ‘안정된’ 직업은 틈을 주지 않으며 그런 상황에서 내 일상은 피곤해지기만 했다. 그건 매우 좁은 길이다. 잘 보이지 않는 칼날 같은 길.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려 했더니, 다들 그러면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게.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버리니 ‘전환’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회복 불능. 결국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에서 휴식 같지 않은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그러고는 “소중한 것들에 시간과 마음을 많이 쓰면 좋겠습니다”라는 뜬구름 같은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푹 빠져 산다는 말이 있다. 그것에 온전히 젖어 있는 생활이다. 밥을 먹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이를 닦을 때도, 기차 안에서도, 멀리 여행을 떠나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 일상 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 그런 것이 당신에게 있다면 그 순간 ‘뮤즈가 다녀가듯’ 예술이 일상에 머무는 순간이 아닐까. 그것이 일상예술이 아닐까.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소중한 것들을 찾는 지난한 시간이 쌓이고, 그것을 찾았을 때는 또 그것을 지속하는 데 그만큼 긴 시간을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제 어떤 전환을 바라는 내 동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어두운 밤, 다시 길을 거슬러 경주로 돌아오면서 지리산이 참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경주 핵발전소도 가깝고. 이제 탈핵이 나의 일상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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