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우리 집은 북한산 백운대에서 직선거리로 10㎞쯤 떨어져 있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 없어서, 아주 맑은 날엔 북한산 자락이 마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처럼 잘 보인다. 그런 날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좋음’인데, 아쉽게도 그렇게 자주 누릴 수 있는 행운이 아니다. 2013년 말 도쿄 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서울의 뿌연 하늘이었다. 기분 탓인지 숨이 턱, 턱, 턱 막혔다. 1970년대 농촌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나라처럼 공기가 좋고, 물이 맑은 나라가 없단다”라는 말을 선생님께 무시로 들었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알았다. 그런데 보릿고개가 남아 있던 그 가난한 때 누렸던 것을 지금은 누릴 수 없다니, 가만 생각해보면 어이없다. 도쿄 무사시노시에 있는 학교법인 세이케이학원은 기상관측소를 운영한다. 관측소에선 매일 아침 기온·강우량과 함께, 남서쪽으로 85㎞ 떨어진 후지산이 학교 옥상에서 육안으로 보이는지를 관찰해 기록한다. 공장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오염이 골칫거리로 떠오른 1963년에 처음 시작한 일이다. 1965년에는 후지산을 볼 수 있는 날이 연간 22일에 불과했다. 1968년까지도 연간 40일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1973년이 되자 80일로 늘어났다. 1999년에는 처음으로 연간 100일을 넘겼다. 1870년대 도쿄에 살던 미국인이 기록한 자료를 보면, 에도시대에도 1년에 100일가량 후지산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산업화 이전의 상태를 거의 회복한 것이다. 후지산을 볼 수 있는 날이 늘어난 것은 도쿄의 공기가 건조해진 영향도 있지만, 대기 중 미세먼지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 시작된 것은 1968년 ‘대기오염 방지법’이 제정되면서다. 처음에 별 효과를 못 보자, 1970년에 오염물질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법을 큰 폭으로 고쳤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도록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미노베 료키치 도쿄도지사다. 1967년 4월 선거에서 사회당·공산당 연합 공천을 받아 출마한 그는 “광장과 푸른 하늘”을 되찾겠다고 역설했다. 당선이 되자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에 공해국을 만들었고, 도쿄도민의 공해헌장이라 불리는 ‘도쿄도 공해방지 조례’를 만들었다. 도쿄전력 등 기업과는 공해방지협정을 맺었다. 그런 노력이 전국에 퍼지고, 국회를 움직였다. 정부가 26일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2022년까지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31.9%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미세먼지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박근혜 정부가 6월에 부랴부랴 만든 ‘미세먼지 특별대책’에선 2021년까지 미세먼지 배출량을 14% 줄이겠다고 했다. 둘을 비교하면 이번 대책이 매우 의욕적임을 알 수 있다. 예산도 7조2천억원 투입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미세먼지 발생량을 목표만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앞으로 적잖은 난관이 있을 것이다. 돈이 드는 일이고, 누군가는 규제에 따른 불편과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 넘어설 힘은 ‘맑은 하늘’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응원에서 나온다. 미노베가 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때 ‘푸른 하늘 배지’를 팔아 선거자금을 모았는데, 무려 70만개가 팔렸다고 한다. 오늘 하늘은 뛰어들면 풍덩 소리가 날 것 같다. 이 얼마나 좋으냐. je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