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영화 <남한산성>을 관람했다. 영화와 현실이 겹쳐서 다가오는 느낌은 각자 다를 터인데, 개인적으로는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최명길의 목을 베라고 인조에게 간청하는 장면이 새삼 인상 깊었다. 소설을 다시 펼쳐보았다. “명길은 본래 이적의 무리와 밀통한 자이옵고, 이제 귓속말로 전하를 미혹하고 적의 말을 옮겨서 전하를 협박하는 자이옵니다. 명길이 과연 누구의 신하이옵니까. 명길의 머리를 베어 적진에 보내시고, 전하께서 친히 성첩에 올라 싸워서 지키려는 뜻을 보이셔야만 성첩이 다시 설 것이옵니다.” 대소 신료들이 마루에 이마를 찧으며 소리치는 말들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에 대한 보수세력의 비난과 정확히 포개진다. “문 특보는 본래 종북주의자로, 이제 귓속말로 대통령을 미혹하고 북한의 말을 옮겨서 대통령을 협박하는 자다. 문 특보의 머리를 베고, 대통령이 직접 전쟁 불사의 뜻을 강력하게 보여야만 북핵을 막을 수 있다.” 최명길의 목을 베라는 사대부들의 상소가 산더미처럼 쌓였듯이, 문 특보의 목을 베라(특보 해촉)는 보수신문들의 상소가 산더미다. 문 특보를 무조건 두둔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의 처방이 100% 옳은 것도 아닐 것이다. 단지 특정 프레임에 갇힌 사고의 답답함이 되풀이되는 모습이 안타까워서다. 병자호란 당시 청과의 휴전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자명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대의명분론 등의 유교적 사고에 깊이 침윤된 당시 조선 사대부들의 인식은 딴판이었다. 고루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의 중요성, 그것이 바로 <남한산성>에서 취해야 할 교훈이 아닐까. 한-미 동맹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동맹은 전쟁을 막기 위한 것이지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게 동맹의 기능이 아니다. 특히 현대 국제관계에서 동맹의 규범은 전쟁 억지력 강화다. 동맹의 한쪽이 전쟁을 강력히 반대하는데 다른 한쪽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과연 올바른 동맹인가.” 문 특보의 이런 발언이 정녕 “북한에서 간절히 바라는 것”(자유한국당 대변인) 따위의 융단폭격을 받아야 옳은가. <남한산성>의 원작자인 소설가 김훈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는 말하자면 지금의 한-미 동맹 같은 거였을 거예요. 우리가 한-미 동맹에 의존해서 살고 한 시대를 버티는데, 한-미 동맹이라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유효한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것도 점점 변화하고 진보하지 않으면 결국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걱정이지, 대안을 말할 수는 없죠.” 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정치지도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국제정세의 거센 격랑 속에서 창의적 대안 찾기는 닫힌 사고로는 불가능하다. 남한에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않고 미국의 군사행동으로 북핵을 해결할 수 있는가. 중국이 움직이기만 하면 북핵이 저절로 해결되는가. 중국이 그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가. 미국에 전술핵을 구걸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유지될까. 이런 희망들은 “구원병과 함께 떨쳐 일어서면 대의가 이미 우리와 함께했으니 오랑캐를 국경 밖으로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병자호란 당시 격서와 똑같이 비현실적인 환상이다.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지만 평화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다. 평화는 양보이며, 결국 ‘부분적 평화’가 될 수밖에 없다. 비핵화는 모든 것이 과정이다. 핵 동결을 ‘입구’에 놓고 완전한 비핵화를 ‘출구’에 놓아야 비로소 현실적 해법의 단초가 열린다. 한국이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일본 안’과 ‘중국·러시아 안’ 사이의 절충안을 만드는 중간자적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말들은 문 특보가 여러 강연에서 되풀이해온 말들이다. 아니 실제로는 헨리 키신저, 시그프리드 헤커, 로버트 갈루치 등 미국의 외교 전문가, 핵 전문가들의 말이기도 하다. 이런 말을 종북으로 매도하고 한-미 동맹의 중요성만 마냥 입에 달고 살면 제대로 된 북핵 해법이 나올까. 최명길이 선택한 길은 누가 보아도 옳았으나 그 후손들은 “나라를 욕되게 한 자의 후손”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반면에 김상헌의 후손들은 손자 대에만 영의정이 두 명이나 나왔고, 7대손에 이르러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문을 열었다. 척화파의 정치적 계승자를 자처한 노론은 기성의 신분제도와 봉건적 가치를 고수하며 기득권을 누렸다. 북핵 해법으로 전쟁 불사를 외치는 21세기 척화론자들을 지켜보면서 지금도 그 흐름이 계속되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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