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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대형참사와 대통령의 눈물

등록 2017-12-27 18:37수정 2017-12-27 19:36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은 대형참사 앞에서 대통령이 할 일의 첫출발은 바로 울먹임이다. 권력자의 눈물은 단순한 눈물일 수 없다. 그것은 희생자에 대한 연민의 눈물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반성의 눈물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각오의 눈물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진정성 있는 눈물은 많을수록 좋다.
김종구
편집인

지난 이야기지만, 2014년 2월에 ‘응답 말라 1994’라는 제목의 원고지 5장짜리 조그만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강당 붕괴 사고로 부산외국어대 학생 등 10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난 뒤였다. 당시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드라마가 <응답하라 1994>였는데, 드라마 내용 중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에피소드로 등장한 데 착안한 제목이었다. 취임 초 하늘을 찌를 듯하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인기가 추락한 것은 잇따른 대형 사건사고와 이에 따른 민심 이반도 한 원인이었음을 상기시키며 박근혜 정부에 각별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무사태평했다. 대형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사고가 난 뒤에 국가 그리고 대통령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결국 세월호 참사를 통해 스스로 침몰했다.

현 정부 들어 계속 터져 나오는 대형 사건사고가 심상치 않다. 인천시 영흥도 낚싯배 전복사고,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 등으로 이미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기회를 놓칠세라 야당들의 공세도 거세다. 대형 안전사고가 정권에 큰 위협요인이 될 수 있음을 이미 학습한 터이니 십분 이해가 되는 반응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 역시 어느 정권에서나 야당들이 내놓는 단골 메뉴다. 하지만 제천 화재 희생자 장례식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울먹임을 놓고 “대형참사 앞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겨우 울먹이는 것인가”라는 자유한국당의 질책은 쓴웃음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사실 우리 국민은 한참 동안 국가 최고지도자의 눈물을 보지 못한 채 지내왔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태생적으로 눈물 결핍증 환자들 같았다. 좋게 말하면 강인한 멘탈의 소유자들이고, 정확하게 말하면 야멸차고 무자비한 성품의 소유자들이다. 박 전 대통령이 딱 한번 눈물을 보인 적이 있긴 하다. 세월호 참사가 난 뒤 34일이 지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다. 언론들은 ‘눈물 담화’라며 대통령의 눈물에 감격과 황송함을 표시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눈물의 순도’에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마음이 슬퍼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자기암시를 통해 감정선을 최대한 끌어올려 ‘짜내는 눈물’ 같아 보였다. 그 눈물의 진정성 여부는 그 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충분히 확인됐다.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은 대형참사 앞에서 대통령이 할 일의 첫출발은 바로 울먹임이다. 권력자의 눈물은 단순한 눈물일 수 없다. 그것은 희생자에 대한 연민의 눈물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반성의 눈물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각오의 눈물이다. 그래서 지도자의 진정성 있는 눈물은 많을수록 좋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사나운 사자임과 동시에 교활한 여우여야 한다”고 설파했지만, 우리의 지도자들은 여기에 더해 사슴의 선한 눈망울을 함께 가져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처럼 상처받는 환경에 노출된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눈물을 바탕으로 안전사고를 뿌리 뽑을 사자처럼 과감하고 여우처럼 지혜로운 대책이 나와야 한다.

다만 몇 가지는 유념했으면 한다. 첫째, 과거 탓과 상황 탓은 금물이다. 대형 안전사고의 뿌리는 깊고도 넓다. 국민의 안전불감증, 일선 행정기관의 업무 태만, 제도적 허점 등이 곳곳에 널려 있다. 세월호 때 박 전 대통령이 ‘적폐’를 이야기했는데 말 자체는 틀린 게 아니다. 그러나 그런 변명에 기대려고 하는 순간 추락은 시작된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서울시장을 전격 경질하는 등 신속한 조처를 취하고서도 “부실기업을 떠맡은 기분”이라는 말 한마디로 나락에 떨어진 것은 길이 교훈으로 삼을 일이다.

또 한가지, 이제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의 대응이 신속했다든가 희생자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든가 하는 것이 더는 청와대의 홍보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다행히 희생자가 별로 나지 않았으면 모르지만 다수의 인명 피해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신속한 구조 대처 지시가 중요 뉴스로 부각되는 현상은 부자연스럽다. 눈물이 메마른 대통령, 늑장꾸러기 ‘비정상’ 대통령이 물러난 지금, 대통령의 정상적인 모습이 더는 뉴스가 안 되는 것도 나라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증거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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