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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조선일보’ 과하다2 ― 걱정스러운 평창과 그 이후

등록 2018-02-05 17:44수정 2018-02-05 18:56

김이택
논설위원

2차대전의 에이(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1945년 9월 옥중서신에서 “미-소 관계가 악화하면 처형당하지 않고 나갈 수 있다”고 썼다. 결국 기대대로 3년 만에 석방돼 나중에 총리까지 지냈다. 미-소 냉전 구도 아래서 ‘반공’이 일본의 전범을 살리고, 한국에선 친일파를 살렸다. 6·25 전쟁을 거치며 한국의 친일파는 완벽하게 부활했고 ‘반공’ 이데올로기는 이들을 보호해주는 확실한 ‘부적’이 돼주었다.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고백했듯이, 남북 모두 반세기 가까이 서로의 ‘안보 위기’를 정치에 이용했다. ‘적대적 공존’이다.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도 옛 중국이 아니지만 한반도에는 여전히 냉전시대 추억과 논리에 사로잡힌 세력이 강고하게 버티고 있다. 이제는 ‘북핵’이 이들에게 새로운 부적이 돼주고 있다.

북핵이 아이시비엠(ICBM) 단계에 이르러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린다. 위기의 순간 북한의 참가로 흥행과 함께 대화의 지푸라기를 잡았다. 한쪽에선 어렵게 만들어진 남북 대화의 불씨를 살려 북-미 대화의 접점을 찾으려 애쓰지만, 반대쪽에선 냉전 논리로 기득권을 지켜온 세력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

이들의 대북 강경론 중심에 <조선일보>가 있다.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한 경계와 우려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 수준을 넘어 모처럼의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정도에 이르면 ‘반북’ 선동이다.

‘북 왕조 선전장 만들어주려 2전3기 올림픽을 유치했냐’더니, 북과의 대화도 ‘독 든 만두’라며 ‘죽 쒀서 개 주네’란 표현까지 인용했다. ‘(북의) 낙하산 선수는 오지 마라’고도 했다. ‘상전 모시듯’ 하는 정부의 ‘비굴한 자세’를 경고할 수는 있겠으나 ‘북 대변인이냐’는 매도는 지나치다. 입장식 때 태극기가 먼저 들어오고, 여자아이스하키 이외 경기장에서는 모두 태극기가 사용되는데도 ‘주최국의 상징을 지웠다’며 한반도기를 비난하는 건 분명한 왜곡이다. ‘김정은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더니 정작 남북이 대화를 시작하자 ‘제재가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양보하지 말라고 딴지를 거는 것도 앞뒤 안 맞는 주장이다.

문제는 평창 이후다. 미국의 강경파는 코피작전까지 거론한다. 엄청난 희생자가 나올 수 있어 우리로선 지지할 수 없는 방안이다. 조선일보는 ‘제대로 된 제재가 막 시작됐으니 아직 군사조처에 나설 상태는 아니’라면서도 ‘다른 수단이 없을 때만 검토될 수 있다’고 가능성은 열어놓았다. 위험한 논리다. 제재는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대북 제재와 대치상태가 계속돼온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북은 4차례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 성능과 사거리를 늘려왔다. 반면 남북 대화와 협상이 진행되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그나마 핵·미사일 개발이 중단되거나 감소됐다. 부인할 수 없는 팩트다. 제재와 대치로 시간이 흐를수록 북의 핵탄두 수가 늘고 미사일 완성도가 높아지면 협상만 더 어려워진다. 최근 몇해 우리가 경험으로 아는 사실이다.

한·미의 강경파들은 사실상 제재에 올인하면서 협상에는 까다로운 조건을 걸어놓았다. 조선일보는 ‘북핵 폐기를 위한 대화는 환상’이라며 ‘대북 제재가 수년간 계속되면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것’이라는 논조를 유지해왔다. ‘북핵은 대화·협상으로 폐기시켜야 한다’면서도, 북에 ‘비핵화 용의를 먼저 밝히라’고 요구하는 강경 노선과 발맞추고 있다. 북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헌법에 못박은 상황에서 비핵화를 조건으로 한 협상은 사실상 대화·협상을 하지 말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제재와 협상을 대하는 미국·일본과 우리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평창 이후 다른 곳을 본다’고 했다. 그간 논조에 비춰 대화와 압박 사이에서 사실상 미국 쪽에 맞추라는 뜻이겠다. 정말로 핵무기의 실전배치를 막으려면, 더욱이 북핵을 협상용이 아니라 공격용으로 보는 세력이라면 핵 동결부터 서두르는 게 급선무다. 이를 위해선 한-미 훈련 규모를 축소하거나 일시 중단하는 게 가장 유력하고도 현실적인 맞교환 카드다.

기시의 외손자 아베가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미 군사훈련 재개를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반공’으로 일어선 외할아버지처럼 ‘북핵’으로 국내 장사 해보겠다는 심보다. 조선일보도 그편에 설 텐가.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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