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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대선 주자가 지휘하는 권력 수사는 ‘정치행위’다

등록 2020-12-09 14:42수정 2020-12-10 02:40

‘살아있는 권력 수사가 개혁’이란 논리는 애초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용납하지 않는 정권에선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대로 성역 없는 수사를 보장한다고 곧 검찰개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야권 1위 대선 주자가 지휘하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는 이미 정치행위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에서 강연을 마치고 강의동을 나서고 있다. 진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에서 강연을 마치고 강의동을 나서고 있다. 진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여야가 모처럼 검찰개혁에 의견을 모았다. 국회 사법개혁특위 6인소위 의원들이 대검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특별수사청을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상황을 감지한 중수부가 소리 없이 상황관리팀을 하나 꾸렸다. 소위가 중수부 폐지 등 합의사항을 발표하자 중수부는 닷새 만에 수사에 뛰어들었다. 언론의 관심이 그리 쏠리고 저축은행 비리 사건이 여론을 장악했다. 결국 ‘해병대가 상륙작전 하는데 부대를 해체하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저축은행 피해자들까지 대검을 찾아 ‘중수부 폐지 반대’를 외치는 상황이 됐다. 국회의 검찰개혁 시도는 물건너가고 중수부 폐지는 흐지부지돼버렸다. 2011년 3월부터 석달 사이 벌어진 일이다.

이듬해 11월 잇따른 검사들의 뇌물·성추문 등으로 퇴진 위기에 몰린 검찰총장이 다시 중수부 폐지 등 개혁안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중수부장 등 부하 검사들이 몰려가 “물러나라”고 했다. 결국 선배인 총장(한상대)이 쫓겨났고 중수부 폐지는 없던 일이 됐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중수부 폐지 여론이 높았지만 검찰은 이런 식으로 위기를 넘겼다.

직전 참여정부 역시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까지 파헤친 중수부의 성역 없는 수사가 여론의 전폭적 지지를 얻으면서 검찰개혁의 시기를 놓쳤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출범 직후부터 검찰개혁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었다. 당사자들에게 맡기면 안 된다며 청와대가 직접 나서 개혁 방안을 조율했다. 검경 사이 수사권 조정을 밀어붙이고 공수처 법안도 가다듬었다.

그런데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을 추진하면서 개혁 대상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두번째 검찰총장한테서 개혁 동참을 약속받았다지만 ‘조직’에 대한 충성심의 깊이는 간과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죽은 권력 청산에 열중하더니 총장에 오른 뒤부터는 ‘살아있는 권력 수사’(이하 ‘살권수’, <한겨레TV> ‘논썰’ 14회 참조)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1년여가 지나면서는 대놓고 ‘살권수=개혁’이라고 부하들에게 지침까지 내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하고 공수처 도입한다고 검찰개혁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 담겼다. 이미 그 ‘살권수’로 열렬한 지지층을 얻고 야권 1위의 대선 주자 반열에도 올랐으니 속내를 감출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1년5개월간의 살권수는 사실 ‘권력형 비리’보다 살아있는 권력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국회 청문 절차에 뛰어들고, 정책 사안에도 칼을 들이댔다. 대학입시용 표창장이나 군대 휴가 절차까지 여론의 심판대에 끌어들여 사건을 키웠다.

‘살권수=개혁’ 논리에 집착하면 균형감 잃은 반쪽짜리 수사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쪽 권력들은 다 빼주기 때문이다. 장관 시절 영장에 혐의사실 빼라고 직권남용한 야당 대표도,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으로 고발당한 야당 원내대표도 인디언기우제나 먼지털기 수사 한번 안 받고 다 무사했다. 검찰 식구나 가족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당장 <채널에이> 사건이나 최근의 전현직 검사 룸살롱 로비 사건만 봐도 제 식구들은 살권수에서 빠진다.

‘살권수=개혁’ 프레임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논리다. 과거 경험이 말해주듯 살아있는 권력 수사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정권에선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대로 참여정부에서 봤듯이 성역 없는 수사를 보장한다고 곧 검찰개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검찰 권한 줄이는 개혁 칼날을 피해보려는 조어일 뿐이니 가짜 개혁이다.

중국 병법서 <36계>의 제1계는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넌다’는 뜻이다. 적을 감쪽같이 속이는 걸 싸움에서 이기는 첫번째 비결로 꼽았다.

총장의 살권수는 개혁 대상 검찰을 일약 권력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 반열에 올려놨다. 갈 곳 몰라 하던 무응답층 상당수가 그에게 쏠렸다. 그사이 살권수가 곧 개혁이 되고 권력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이 오히려 수사 방해 시도처럼 돼버렸다. 대단한 만천과해 전략이다. 이미 살권수에 한번 빠진 이들은 그 한계를 알아채지 못했다. ‘만물박사’ 평론가를 비롯해 상당수 진보 논객들까지 총장 편에 섰다. 참여정부 때 속아놓고 또 속는다. 속는 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야권 1위 대선 주자가 지휘하는 살권수는 이미 정치행위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10일 검찰총장 징계위에 이어 곧 공수처도 출범한다. 총장의 살권수도 막바지에 몰렸다. 성기지만 결코 빠트리지는 않는다는 하늘 그물까지 속일 수 있을까.

김이택 대기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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