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추-윤 대결’은 ‘검찰·언론’ 대 ‘정치’ 권력 갈등의 대리전이었다. “정권을 창출할 수도 퇴출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 언론권력이 ‘해체’ 위기의식을 느낀 검찰권력과 손잡고 정치권력에 맞섰다. 그 파열음이 코로나에 지친 국민을 더 힘들게 했다. 그 와중에 촛불정권의 ‘개혁’ 명분마저 퇴색했으니, 성찰이 절실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비밀회동을 했다고 보도한 지난 7월 <뉴스타파> 화면. 뉴스타파 영상 캡처
“권력으로 덮겠다면 한번 덮어봐라. 나도 끝까지 파헤칠 테니…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의 동서였던 김영수 이스트우드컴퍼니 대표가 최근 <조선일보> 사주 일가를 다시 겨냥하고 나섰다. 지난해 7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방 사장의 자금세탁 의혹을 폭로한 데 이어 이번엔 ‘방 사장 일가 비자금과 여러 비리’를 경찰에 진술했다고 공개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100주년을 보내며 <한겨레TV> ‘저널어택’이 연말특집(
12회 ‘100년 검증’ 중편)으로 마련한 인터뷰에서다.
지난해 인터뷰에서 ‘500만 달러가 일본인 등을 거쳐 들어왔다가 70여개 계좌로 쪼개지는 등 전형적인 자금세탁 수법이 있었다’고까지 언급했는데도 세무당국이나 수사당국 어디서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방 사장이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하는 바람에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그동안 추가 조사한 ‘방 사장 일가 비자금과 비리’들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한다. 진술 내용을 녹화해달라고 주문하고 제대로 조사하는지 지켜보며 공론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검찰·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 국회에 호소하고 국민청원도 하겠다고 했다.
그가 맞장 뜨겠다고 겨냥한 ‘권력’은 물론 ‘언론권력’이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섰다는 정권에서도 세무·수사당국은 “의혹을 안 쳐다보려고 무지 노력”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웬만큼 여론이 일어나지 않고는 검경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계속 침묵할 것이다. 그러니까 ‘언론권력’ 아니겠는가.
그런데 ‘언론권력’만 문제가 아니다.
2020년 3월10일 오전 11시23분, 기자와 검사가 10분간 통화했다. ‘위험해서 못하겠다’는 기자에게 검사는 ‘나를 팔아’라며 부추겼다. 3일 뒤 기자는 검사와의 통화 녹취록을 제보자 쪽에 보여주며 정말로 검사를 ‘팔았다’. 3월20일 오후 2시10분에도 기자와 검사는 7분 이상 통화했다. 이번에도 검사는 ‘다리 놔주겠다’고 했고 기자는 통화녹음까지 들려주며 검사를 또 ‘팔았다’. (기자가 전한 이런 대화는 후배 기자 휴대폰에 다 녹음돼 공소장으로 공개됐다.)
이렇게 기자와 검사는 여권 유력인사를 겨냥했다. 그런데 이런 시도가 들통나자 기자 쪽은 검사에게 즉각 연락해 “녹음파일은 없다”고 했다. 사실상의 말맞추기다. 열흘 뒤 다른 방송이 이런 유착 의혹을 폭로하자 검사는 “녹취록과 같은 대화 사실이 없고, 녹취록이 존재할 수도 없다”고 발뺌했다. 거짓말은 곧 드러났다.
이 위기 상황에서 ‘검찰 권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리의 검찰주의자’가 감찰을 막아주는 사이 기자의 휴대폰 기록도 노트북의 흔적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전언 증거’, ‘정황 증거’는 남았지만 법정에 내세울 ‘검언유착’의 ‘직접 증거’는 결국 사라졌다. 그래놓고 국정감사장에선 “뭐 나온 것 있느냐” “내가 수사를 막았느냐”고 큰소리쳤다.
이렇게 사건 초기 증거 확보 단계부터 틀어막을지, 아니면 검사 30여명쯤 투입해서 ‘먼지털이’ 수사로 샅샅이 훑을지도 맘대로 결정한다. 사건을 덮을 수도 키울 수도 있는 권력, 그게 바로 검찰권력이다.
언론권력이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검찰권력은 ‘법치’라는 이름의 절대반지를 갖고 있다고 여긴다. 채널에이 사건에서 두 사이비 권력은 환상의 콜라보를 보여줬다. 검찰권력이 초동수사에 장애물을 설치하고, 언론권력이 이에 발맞춰 프레임을 뒤틀었다. ‘검언유착’을 ‘권언유착’으로 뒤집었다.
법원이 뒤늦게 ‘수사 방해’ 사안은 검찰총장 재량사항이지만 ‘감찰 방해’는 공공감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두 권력이 이미 장악한 여론시장을 뒤집기는 역부족이다.
앞에서 본 두 장면은 언론권력과 검찰권력의 행태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올 한해 치열했던 이른바 ‘추-윤 대결’은 ‘검찰·언론’ 대 ‘정치’ 권력 투쟁의 대리전이었다. “정권을 창출할 수도 퇴출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 언론권력이 ‘해체’ 위기의식을 느낀 검찰권력과 손잡고 정치권력에 맞섰다. 1년 내내 그 갈등의 파열음이 코로나에 지친 국민을 더 힘들게 했다. 그 와중에 정권의 연이은 헛발질은 개혁의 명분과 정당성마저 퇴색시켰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했고, 검찰개혁의 사명을 띠고 출범한 정부로선 심각하게 성찰할 일이다.
새해엔 개혁의 성과가 꽃피우길 기대해본다. 아듀, 2020!
김이택 ㅣ 대기자 ri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