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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분단의 어휘 / 김하수

등록 2018-02-11 17:47수정 2018-02-11 19:08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말은 사회 변화의 영향을 예민하게 받는다. 임시정부 시절에 김구 선생은 국무위원회 주석이었다. 그러나 분단 이후 이 ‘주석’이라는 직책과 명칭은 점점 낯설어졌고, 어느샌가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언어는 어찌 보면 매우 보수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무척 눈치가 빠른 편이다.

오래간만에 남과 북이 만나 회의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하고, 운동경기도 같이 하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종종 눈에 띈다. 그동안 ‘한국과 북한’ 하는 식의 표현을 자주 했는데, 양측의 당국자들이 만나 이야기할 때는 갑자기 ‘남측’과 ‘북측’이라는 말을 하고 서로 상대방을 ‘귀측’이라고 한다. 우리가 ‘남조선’이라는 말을 달가워하지 않듯이 북측에서는 ‘북한’이라는 말을 내키지 않아 한다.

남과 북의 순서도 다르다. 남측은 양쪽을 일컬을 때 ‘남북’이라는 말을 쓰지만 북측은 ‘북과 남’ 혹은 ‘북남’이라고도 한다. 사실상 두 국가이면서 서로 국가라고 부르는 일을 저어한다. 중국 대륙과 대만이 서로의 문제를 ‘양안 문제’라고 부르는 심정과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이번처럼 남에서 북으로 가는 일을 ‘방북’, 북에서 남으로 오는 것을 ‘방남’이라는 좀 어색한 표현을 쓰게 된다.

뿐만 아니라 도라산에서 육로로 경계선을 넘을 때는 국경이 아닌 그저 그런 ‘경계선’을 넘는다는 듯이 ‘입경’이라는 말을 쓴다. ‘입국’이니 ‘출국’이니 하는 말이 껄끄럽기 때문이다. 사실상 분단되었으면서도 감성적으로는 그것을 ‘사실’로 확인하는 말을 불편해하는 것이다. 더구나 남과 북의 공동 행사라는 것이 늘 하다 말다 하고 있으니 안정적인 어휘와 표현이 형성될 틈이 없다. 작은 행사 하나라도 제도화하고 정규화하면 어떨까? 우리의 언어를 너무 오랫동안 눈치만 보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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