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처한 지금은 ‘불안의 정치’가 어느 때보다도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안보’에 대한 과잉 관심은 시민적 자유의 위축과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지기 쉽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면, 우리는 늘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사태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녹색평론> 발행인 남북관계에 모처럼 봄기운이 돌고 있다. 평창겨울올림픽이 계기가 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민주정부가 들어선 덕분이다. 이 점에서도 ‘촛불혁명의 위업’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북특사단의 귀환 보고에 따르면, 이제 곧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북-미 간 대화의 가능성도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체제의 안전만 보장된다면 핵무기를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북측의 발언은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비핵화’라는 말 자체를 거부하던 최근까지의 태도를 생각하면 상당히 뜻밖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동안 북한이 가장 첨예하게 반발해왔던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예년 수준이라면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보인 점이다. 이 모든 것은 북-미 간의 평화협정 체결을 간절히 원한다는 뜻일 것이다.(남한의 수구세력은 이를 두고 또다시 ‘기만전술’ 운운하지만, 클린턴 정부 때 맺어진 북-미 간 기본합의의 틀을 결정적으로 깬 것은 2002년 1월에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조지 부시(아들)였다.) 하기는 국가관계에서 ‘진정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아무리 굳게 약속했을지라도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은 ‘국가라는 괴물’의 숙명적 악습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점을 늘 냉철히 인식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일이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강도의 경제봉쇄에 더는 버틸 힘이 없어졌을 수도 있고, 트럼프의 협박성 발언들이 그냥 말에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진짜 동기가 무엇이든, 북한이 대화를 통한 현상변경을 원하는 것은 틀림없고, 남한 사람들도 늘 ‘불안’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만큼 모처럼 부드러워진 이 국면을 잘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아니라도, 아직 낙관할 때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대북특사단의 보고에 대한 트럼프의 첫 반응은 일단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행태로 볼 때 그가 실제로 북한을 진지한 대화의 상대로 여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라는 개인의 인성도 중요한 변수이긴 하다. 하지만 그의 나르시시즘이 극단적으로 보이는 것은 틀림없지만, 타자에 대한 배려 없이 오로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오늘날의 허다한 정치인들의 공통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따져보면 미국의 (혹은 세계의) 최고 권력자 중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졌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미국도 세계도 어쨌든 아직 멸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은 개인을 넘어서는 보다 큰 통제력이 정치시스템 속에서 작동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통제력이 흔히 미국이나 세계인들의 보편적인 이익, 즉 공공선이 아니라 극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서 작동한다는 점이다. 즉,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정치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은 늘 ‘군산복합체’였고, 지금도 그렇다는 뜻이다. 진부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군산복합체’를 상정하지 않고 우리가 미국의 안보, 외교정책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최근 <녹색평론>(2017년 11~12월)에 번역·소개된 글 <‘북핵 위기’라는 허상>은 주목할 만한 자료이다. 현재 벨기에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글의 필자 다니구치 나가요는 오랫동안 세계의 안보와 군사문제를 취재해온 베테랑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자신의 풍부한 취재경험을 근거로 ‘북한 핵 위기’에 관련된 심히 미심쩍은 사실을 지적한다. 그가 먼저 주목하는 것은, 파키스탄 핵개발의 주역으로 알려진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유럽으로부터 핵무기 개발에 필수적인 기술과 특수소재, 부품 등을 몰래 빼돌리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였고, 그중 일부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그 자신의 취재·조사에 의하면, 이 사실은 이미 처음부터 유럽과 미국의 첩보기관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3년에 이르러 세계의 언론을 통해 칸 박사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핵 암시장’의 실태가 폭로되자 국제사회의 비난의 표적이 된 파키스탄 정부는 이듬해 1월에 칸 박사를 형식상 체포하고, 곧 그를 사면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그런데 근 사반세기 동안이나 방치했다가 2003년에 와서야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이 문제가 부각된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고 다니구치는 묻는다. 이와 관련해서 또 하나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증언이 있는데, 그것은 네덜란드의 전 총리 뤼버르스가 행한 발언이다. 그는 1973년에서 1977년까지 네덜란드의 경제장관으로 재임 중 칸 박사의 핵 기술 스파이 행위에 대해서 미국 쪽에 통고를 했는데, 미국으로부터는 계속해서 감시와 보고를 하되 그를 체포하지 말고 일단 그대로 두라는 지시가 돌아왔다고, 몇몇 공영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증언했다. 물론 미국 중앙정보국은 근거 없는 말이라고 반박했으나, 정보공개청구에 의해 공개된 비밀문서들을 보면 미국이나 네덜란드 정부는 칸 박사의 ‘간첩행위’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어떠한 적극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북핵 위기’의 배경을 옳게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가 붕괴된 이후 국방산업의 유지·확대를 위해 필요한 ‘적’을 잃어버린 군산복합체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출구가 있어야 했다. 그리하여 때마침 부상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과 이라크에 대한 침략전쟁이 일단락된 후 2003년 10월에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세가 시작되었음을 다니구치는 주목한다. 국방산업이나 군사정책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동북아시아는 가장 유망한 상업적 기회를 제공하는 시장”인 것이다. 이 점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자료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펴내는 보고서 ‘세계 군사비 동향’이다. 이에 따르면, 2016년의 경우 세계 전체의 군사비 추계는 전년 대비 0.4% 증가한 1조6860억달러였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2007~2016년 사이에 무려 74%나 증가한 3080억달러였다. 그러니까 한반도를 비롯하여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에서 긴장이 고조될수록 동아시아 전체의 군사비는 필연적으로 증가한다. 뒤집어 말하면, 평화와 화해의 움직임이 진전되면 군사 비즈니스 측면에서의 시장가치는 하락하는 것이다. 지역의 불안정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꼭 미국의 군산복합체만이 아니다. 흔히 산업국가들의 최우선적인 관심사는 부국강병이지 시민들의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이 아니다. 더욱이 오늘날 국가의 안보나 외교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은 거대기업과 금융자본이다. 그런 까닭에 무엇보다 과잉생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경제의 입장에서 보자면, 군수산업의 확대는 매우 장래성 있는 활로로 여겨지기 쉽다. 대표적인 경우가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남북한 간의 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한반도의 불안한 상황을 자신의 정권 강화에 이용하려는 의도 못지않게 일본 경제의 군사화를 통해서 ‘제국 일본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는 망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불안’을 조성하고 부추김으로써 통치기반을 강화하려는 정치세력은 늘 있어왔지만, 세계 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처한 지금은 ‘불안의 정치’가 어느 때보다도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안보’에 대한 과잉 관심은 시민적 자유의 위축과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지기 쉽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면, 우리는 늘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사태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습관을 기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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