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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전쟁의 길, 평화의 길 2 / 백기철

등록 2018-03-22 17:26수정 2018-03-22 20:04

백기철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2월 초 평창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외교가 국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클지 몰랐다. 요즘 외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심 걱정스러웠다. 대통령이 되고서야 외교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면 많이 늦었기 때문이다. 외교 난국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회의도 들었다.

한 달 뒤 상황은 급반전됐다. 한반도에 지정학적 창이 열리며 기회가 찾아왔다. 일종의 해빙점이 온 것인데, 문 대통령이 실마리를 풀어냈다.

약소국 대통령으로서 풍찬노숙하며 꿋꿋이 평화의 길을 걸어온 문 대통령 노력을 평가절하할 이유가 없다. 트럼프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었고, 시진핑에게 홀대받았다. 욕먹으며 김여정을 극진히 대접하고 김영철을 만났다. 나라 안팎에서 온갖 훼방을 놓았지만 전쟁은 안 된다는 일관된 태도로 정도를 걸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 앞에 놓인 외교대통령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한국 외교가 빛나던 때는 디제이 시절 정도다. 이제 시작일 뿐 너무도 많은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평창올림픽 중재외교의 성공은 한국에 의미있는 이니셔티브, 다시 말해 주도적 운전자 역할이 분명히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북이 정상회담을 결단했지만, 한국이 안을 내고 양쪽을 오가며 의중을 조정했다. 운전자론이 비겁한 구걸 외교요, 약소국의 공허한 외침이라는 비판은 근거없는 것이었다. 운전자론이야말로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이 핵·미사일로 사고 치면 미국이 잠시 틈을 내 상대하다 다시 냉담해지곤 했다. 한국은 항상 뒷수습하느라 바빴다. 미국의 페리 프로세스가 임동원 구상에 기초했듯, 한국이 실마리를 제공한 경우도 많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동맹인 미국과 굳건히 가야 하지만, 특수관계인 북한 사정도 살펴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판문점의 봄은 역사의 순간, 운명의 순간이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상시로 만날 수 있으면 좋다. 남-북-미 정상회담, 동북아 6개국 정상 평화선언도 이어질 수 있다. 판문점이 평화의 메카로 거듭나는 것이다.

평화의 대장정에서 내부 합의도 중요하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평화는 영원하다. 평화를 결연히 추구하는 것과 대화를 위한 대화는 다르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대화도, 압박도 할 수 있다. 압박과 제재도 평화로 가기 위한 것일 뿐이다. 전쟁을 해서라도 통일하자는 건 위험천만이다.

평화체제로 가는 길에 주한미군의 존재는 현재로선 불가피하다. 중-일 패권다툼 와중에 남북 모두에 주한미군이 긴요할 수 있다. 남한 내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거세져 현실화할 수 있다고 하는 건 기우에 가깝다. 남한에서 정당이든 언론이든 유의미한 세력으로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이들은 없다.

김정은도 하루빨리 북한을 정상국가로 이끌어야 한다. 이번에도 대화한다며 장난치려 들면 우군을 찾기 어렵다. 그야말로 고립무원, 사면초가의 길로 빠져들 것이다.

문 대통령은 65살, 김정은은 30대 초중반이다. 문 대통령이 아버지뻘, 아저씨뻘이다. 국력으로 치면 남한이 북한에 큰형님뻘은 된다. 동네에서 골목대장은 완력만 있으면 되지만, 제대로 된 큰형님 노릇 하려면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 스타일상 큰형님 역할은 잘할 것 같다. 큰형님뻘 되는 남한이 못난 동생 북한을 어루만지고 때론 질책해서 함께 잘 사는 길로 가야 한다. 동생은 잘났든 못났든 피를 나눈 형제이기 때문이다. 그 길이 형님 좋고 아우도 좋은 길이기 때문이다.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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