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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지각 출발 ‘증세 열차’, 갈 길이 멀다 / 안재승

등록 2018-03-29 17:58수정 2018-03-29 19:06

안재승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해 6월29일 “올 하반기에 각계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인사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조세·재정개혁 특별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실행하려면 178조원이 소요되는데 정부는 현실성 있는 재원 마련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당연히 ‘증세 불가피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증세를 추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민관 합동의 범정부기구를 만들어 근본적인 조세개혁 방안을 내놓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특위 출범은 해가 다 가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다 정부는 지난해 12월27일 ‘2018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을 마련할 ‘재정개혁 특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1월에 특위를 만들어 8월까지 1단계 개혁 방안, 2019년 이후 2단계 방안을 완성하겠다고 했다. 특히 올해 안에 보유세 개편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초미의 관심사인 보유세 개편 문제를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특위 출범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3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

보유세 개편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할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출범이 지연되고 있다. 애초 지난해 하반기에 신설하기로 했는데 올해 3월이 다 가도록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보유세 개편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할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출범이 지연되고 있다. 애초 지난해 하반기에 신설하기로 했는데 올해 3월이 다 가도록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특위 출범이 계속 지연되면서 정부가 ‘조세 저항’에 대한 부담 때문에 6월 지방선거 뒤로 미루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애초 조세·재정개혁특위였던 명칭이 ‘조세’를 뺀 재정개혁특위로 바뀐 것이 증세에 대한 정부의 의지 부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억측이라고 부인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9일 “위원 구성에 신중을 기하다 보니 늦어지고 있는데 4월 초에는 출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위원장 선임이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세개혁을 총괄하는 자리인 만큼 도덕성에서 흠결이 없는 인사가 맡아야 하는데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최종 임명 단계 직전에 3차례나 번복이 있었다고 한다. 명칭 변경도 광의의 ‘재정’ 개념이 ‘조세’를 포괄하기 때문에 바꾼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고 했다.

정부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특위 출범이 늦어지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양극화 해소와 저성장 탈출을 위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옳은 방향이나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 확충, 저출산·고령화 극복, 신성장동력 육성 등은 한결같이 많은 돈이 그것도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는 과제들이다. 그런데 ‘초과 세수’에 의존하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재원 마련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세금이 계획보다 많이 걷힌다. 초과 세수 규모가 2016년에 9조8천억원, 지난해엔 14조3천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세수는 대내외 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줄어들 수 있다.

조세개혁을 통한 증세가 불가피하다. ‘증세 없는 복지는 환상’이라는 사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통해 이미 확인됐다.

조세개혁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조세 형평성, 소득 재분배 기능, 담세 능력 등 복잡다기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교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더 어렵다. 광범위한 국민 동의와 지지를 받지 못하면 조세 저항을 불러 실패할 수 있다. 증세가 대다수 국민에게 실생활에서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정권 초부터 시작했어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동안 시간을 많이 흘려보냈다. 이제라도 속도를 내야 한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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