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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윤석열의 이도류(二刀流), 그리고 검찰개혁

등록 2018-04-09 18:04수정 2018-04-09 19:58

김이택
논설위원

윤석열 검사(현 서울중앙지검장)는 몇차례 사표를 썼다. 초임 검사 시절 사표 내고 잠시 변호사를 한 적이 있다. 2006년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 때는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불구속 기류에 반발해 후배인 윤대진 검사(현 서울중앙지검 1차장)가 먼저 사표를 꺼내놓자 이름만 적은 백지사표를 건네줬다. 검찰총장의 영장 청구 결정으로 없던 일이 됐다. 국정원 댓글 수사로 3년여 ‘귀양살이’하던 중에도,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끝낸 직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옷을 벗으려 한 적이 있다고 한다.

9일 서울중앙지검이 이명박 전 대통령(MB)을 기소하면서 국정농단 수사도 마무리 국면에 들어섰다. 촛불시민들이 1년 반 지켜보며 성원을 보낸 데는 댓글사건에서 소신과 기개를 보여준 윤 검사에 대한 신뢰도 한몫했을 것이다. ‘특검 수사팀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란 두 자루 칼로 전직 대통령을 차례로 베었다. 바닥까지 추락했던 검찰이 조금이나마 신뢰를 회복했다면 윤 검사와 그가 지휘한 수사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징역 24년이 선고된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뒤 언론들은 일제히 ‘역사의 심판’ ‘국민의 심판’이며 ‘사필귀정’이라고 평가했다. 유일하게 한 언론과 한 야당만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생뚱맞은 논평을 내놓았다. 이 둘이 그동안 검찰 수사를 겨냥해 주거니 받거니 유포해온 주장들은 사실상 가짜뉴스에 가깝다.

현 정권의 정치보복 의도에 코드를 맞춘 표적수사라는 둘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검찰을 현재 권력을 위해 이전 권력을 물어뜯는 충견에 비유하기도 했다. 지난 9년간의 검찰은 분명 그랬다. 그러나 ‘박근혜 청와대’ 시절 시작된 이번 수사까지 그렇게 평가하는 건 지나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비선실세의 행적이 언론에 꼬리를 잡히면서 시작됐다. 엠비 비리 역시 다스 소송 피해자들의 고소로 물꼬가 트였다. 이후 수사도 굳이 따지자면 정권이 아니라 사기극에 분노한 국민여론에 코드를 맞췄다고 해야 맞다.

전직 대통령이 두 명이나 감옥에 있는 게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각에서 선처를 주장하며 내세워온 근거들엔 동의하기 어렵다. 박-최 게이트는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최태민 일가의 40년 묵은 비리가 곪을 대로 곪아 터진 것이다. 청와대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대통령 권력을 이용해 대기업 돈을 갈취하고 정부의 인사·정책까지 쥐락펴락했다. 엠비 역시 금융실명제·공직자재산등록 제도가 정착된 게 언제인데 수천억원대 차명회사·차명부동산까지 감춰놓고 감히 대통령까지 하겠다고 나섰으니 국민을 우습게 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국정원과 군을 선거에 동원하는 등 국기문란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여전히 ‘무술옥사’ 운운하는 것도 섣부른 동정론자들의 책임이 크다.

헌정파괴 수준의 범죄사실들은 쏙 빼놓고 전직 대통령들이 다 불행을 겪었다는 식으로 눙치는 건 수감된 두 전직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물타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사받은 내용과는 차원이 다르고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본인이 비리를 저지른 적도 없다. 심각한 범죄를 제왕적 대통령제 탓으로 돌리는 것도 교묘한 사실왜곡이다.

두 사람에 대한 단죄는 정경유착·정치공작으로 쌓아올린 박정희 패러다임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고 법과 제도로 뒷받침돼야 성공한다.

검찰의 적극 수사가 검찰개혁 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의도라는 시각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 있으나 설사 사실이라도 수사 성과까지 폄하할 일은 아니다. 다만 검찰도 이제는 국민들의 소망 1순위 ‘검찰개혁’에 힘을 보탰으면 한다. 독점적 거대권력이 스스로 자제력을 갖기는 힘들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휘둘리고 코드 유혹을 받게 된다. 경찰 비대화 우려는 자치분권위에 맡기자. 논의 중인 수사권 조정안은 나름의 안전장치도 담고 있다.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을 주더라도 피해자나 고소고발인이 이의신청하거나, 사망 등 중한 사건은 검찰이 가져올 수 있고, 6개월마다 사무감사로 불기소 사건을 검토하는 정도면 수긍할 만한 대안이다.

이번에는 정말로 검찰이 군살을 덜어내고 명실상부한 정의와 인권 수호기관으로 우뚝 섰으면 한다. 그래서 윤석열의 ‘이도류’(二刀流)도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다. (*이도류(二刀流): 칼 두자루를 동시에 사용하는 일본식 검술. 일본 출신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선수로 투수와 타자를 겸업하는 오타니 쇼헤이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로 유명하다.)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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