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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지역이 중앙에게] ‘봄’을 기다리는 소성리 / 박주희

등록 2018-04-09 18:40수정 2018-04-09 19:19

박주희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 지난 수요일. 소성리 들머리 한쪽은 벚꽃이 만개해 눈부신 꽃길이다. 벚꽃길 건너편은 펼침막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이 마을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묘한 풍경이다. 봄꽃이 만발한 소담한 시골마을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라는 무시무시한 이름 사이의 간격은 아득하지만, 현실이다.

오후 2시 어김없이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수요 평화집회’가 열렸다. 일흔한번째 집회다. 마을 어르신들과 소성리 평화지킴이들, 멀리서 찾아온 시민 70여명이 천막 아래 소복이 모여 앉았다. 커다란 화목난로에 불을 지펴 봄비 탓에 새초롬한 기운을 녹였다. 집회 시작을 알리며 ‘김천율동맘’이 나와 사드반대가에 맞춰 신나게 한바탕 공연을 벌였다. 어르신들의 박수와 호응이 특히 뜨거웠다. 여느 트로트 가수의 공연 못지않은 열기다. 이어지는 참석자들의 발언과 공연은 한가지 바람과 희망을 쏟아냈다. ‘올해는 사드 뽑고 평화 심자’고.

소성리 이야기를 시로 엮고 있는 고희림 시인은 <평화의 씨앗>이라는 시를 낭송해 울림을 줬다. ‘소성리 씨앗으로 재봉틀/ 북을 채우고/ 윗산으로/ 윗강으로/ 끝없이 서로를 쳐다보는/ 눈길 눈결의 발구름을 하면서/ 진달래 꽃자리/ 진달래 꽃베개도/ 38개는/ 준비해야겠습니다.’

곧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겨울올림픽에서 남북단일팀이 아이스하키장에서 하나가 됐고, 북쪽 응원단이 남쪽 시민들과 한데 어울렸다. 양쪽 공연단이 서로 방문해 통일의 노래도 함께 불렀다. 때맞춰 북쪽과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만났고, 곧이어 중국은 사드 보복 조처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봄이 온다’는 남북평화협력기원 평양 공연 주제처럼 정말 곧 언 땅에 봄이 올 것만 같다.

오래 기다려온 만큼 반갑고 가슴 설레는 소식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그럼 사드는?’

지난해 9월 성주골프장에 사드 발사대 4기를 추가로 임시배치하고, 11월에 마지막으로 공사 차량과 장비가 들어갔다. 그 뒤 세상은 사드도 소성리도 잊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은 매일을 하루같이 소성리를 지켜왔다.

‘소성리 평화달력’을 보면, 아침 6시30분부터 시작되는 평화지킴이 활동이 빼곡히 적혀 있다. 매일 오후 3시에는 사드가 배치된 기지 앞 정문에서 1인시위를 한다. 수요일 오후 2시 수요 평화집회가 열리고, 토요일 저녁 8시에는 평화의 촛불이 켜진다. 이웃한 김천에서는 590일 넘게 매일 밤 김천역 앞에서 사드 반대 촛불을 켜고 있다.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도 날을 정해 꾸준히 평화를 빌고 있다.

소성리를 지키는 이들에게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평화를 빚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이 평화에 무임승차한 또 다른 이들은 사드가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며 사드 기지로 통하는 길목을 막는 주민들에게 삿대질을 한다. 서울에 있는 내 집 인근에는 특수학교조차 지으면 안 되지만 경북 저 시골마을에 사드 기지가 들어서는 건 당연하단다. 북한의 핵실험 앞에 사드가 버티고 있어야 수도 서울이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더라도 한반도에 비핵화에 이어 평화협정이 맺어진다면 사드는 더 이상 버틸 명분이 없어진다. 지금 불어오는 봄바람이 더 반가운 이유다.

물론 이곳 주민들은 앞으로도 사드 기지로 난 길목을 터줄 마음이 없다. 주민들을 힘으로 누르고 들어와서는 주인 행세를 하며 버티고 있는 사드와 이웃해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사드 뽑고 평화 심는 그날까지’ 싸울 것이라고 거듭 다짐한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는 ‘평화장터’도 열린다. 사드를 반대하는 싸움에 힘을 보태려고 전국에서 보내준 후원물품을 파는 장터다. 이날은 인근 공동체가 딸기를 내놓았고, 된장과 치약과 칫솔도 팔았다. 딸기 한 상자를 샀다. 대구로 돌아오는 차 안 가득 딸기 향이 퍼졌다. 소성리에 ‘진짜 봄’이 오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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