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올해 여든인 엄마는 팔순 잔치를 고민하던 자식들에게 이렇게 일갈하셨다. 늬들은 팔순이란 말이 어쩜 그렇게 쉽게 나오니? 네 에미가 여든이나 먹었다는 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니? 그 말을 듣고서야 아, 그렇겠구나 했다. 여태껏 팔순은 곧 일가친지 모여서 잔치하는 일로만 생각했는데, 엄마는 밥 먹고 선물할 생각만 하는 자식들이 한심했을 게다. 엄마의 탄식이 이어졌다. 나는 여든이란 나이가 너무 징그럽고 싫어서 잔치 벌여 축하받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다. 나도 내 나이가 십 단위로 넘어갈 때마다 한동안 적응이 안 되어 우울했으니 엄마라고 다르지 않았을 터, 엄마가 울컥 화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칠순, 팔순 잔치를 하는 것은 그 우울을 다독이는 행사가 아니었을까. 가내 무고하여 잔치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위안. 그러니 여느 잔치처럼 마냥 즐겁게 벌일 일이 아니다. 그 속에 덧없는 세월에 대한 애달픔을 꾹꾹 눌러 담고 짐짓 웃는 낯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맛난 거 먹고 놀러 보내고 하는 일에 신이 나 있던 자식들은 철없는 것들이다. 울 엄마의 여든은, 내게도 우울한 사건이다. 평생 어리석은 딸년인 나는 엄마에게 또 이렇게 일패를 당했으나, 최근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미세먼지 뽀얀 저녁, 팔순 우울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뭐라고 시답잖은 위로를 건네며 식사는 잘하셨냐 물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한숨을 푹 쉬는 소리와 함께, 혼자 먹는 밥 뭐 대충 때우는 거지, 그게 밥 먹는 거냐, 너는 식구들이랑 함께 잘 먹었냐는 말이 이어졌다. 각자 휴대폰 들고 앉아 후다닥 먹고 들어간 빈 식탁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엄마의 부러움 섞인 물음에 볼멘소리가 나왔다. 엄마는 엄마대로 푸념을 못 받아주는 딸년 때문에 슬며시 부아가 난 나머지 말끝에 “그래도 너는 네 새끼하고 평생 살 거잖니” 하더니 스스로 그 말에 놀라서 “할 소리는 아니다만”이라고 붙이고는 허둥지둥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전화를 내려놓고서 자신의 외로움에 몰입이 된 나머지 딸에게 못할 소리 했다고 밤새 후회했을 게다. 딸은 요새 천막에서 자주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천막농성장은 발달장애 부모들의 해방구다. 함께 음식을 나누고, 삭발한 서로의 머리를 두고 유쾌한 수다도 떨고 논쟁도 벌인다. 여기서 엄마들은 실없는 농담도 자주 하는데, 걸어다니는 폭탄을 둔 어미는 휠체어에 묶여 있는 아이 엄마를 부럽다 하고, 휠체어 아이 어미는 뛰어다니고 소리라도 맘껏 지르는 아이 엄마를 부럽다 한다. 섭식관을 꽂아 미음을 넘겨주던 어미는 또 끝도 없이 음식을 먹어 비만이 된 아이 엄마를 부럽다 한다. 그러다가는 대체 우리가 뭔 못할 말들을 이렇게 하고 있나 싶어 미안해져서는 붙잡고 한바탕 운다. 이 어미들은 정말로 죽을 때까지 자식과 함께 살고 싶다. 국가에 떠넘기고 홀가분하게 따로 살아가려는 게 아니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을 선언하라는 요구는 그런 게 아니다. 같이 잘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고, 남겨놓고 편히 눈감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울 엄마도 딸에게 새끼와 함께 쭉 같이 살 수 있으니 부럽다고 말한 것을 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 세상에서 새끼와 함께 평생을 같이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때가 되면 또한 나는 내 새끼와 함께 살면서, 울 엄마와는 한평생 살 닿고 지내지 못한 것이 못내 서럽지 않겠는가. 이래저래 엄마와의 대결은 늘 내가 지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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