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파원 “미-일이 일층 긴밀히 연계해 나가며, 모든 납치 피해자의 즉시 귀국을 향해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결의다. 북한이 올바른 길을 걷는다면 북-일 평양선언에 기반해서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의 길이 열릴 것이다.” 18일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다시 한번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꺼내들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9일 북-미 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발표된 뒤 미국 방문 계획을 전격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핵과 미사일 그리고 납치 문제 해결을 향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일층 긴밀히 협력하며 대처해 나가고 싶다”며 납북자 문제를 강조했다. 아베 총리가 납북자 문제를 유독 강조하는 배경에는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한 강경 자세를 강조해서 정치적으로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1970년대 중후반에 바닷가에서 일본인이 잇따라 실종되는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8년 하스이케 가오루와 오쿠도 유키코 커플, 지무라 야스시와 하마모토 후키에 커플 실종 사건이 대표적이다. 베일에 싸여 있던 실종 사건은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으로 단서가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한국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이은혜’라는 여성이 사실은 “납치된 일본인”이라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1988년 가지야마 세이로쿠 일본 국가공안위원장은 국회에서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저지른 것 아니냐는 질문에 “북한에 의한 납치의 의심이 충분히 농후하다”고 답변했다. 1997년에는 납북자 문제의 상징적 존재인 요코타 메구미 사건이 전면에 부각된다. 1977년 당시 13살이던 요코타는 하굣길에 실종됐는데, 당시에는 수수께끼 사건으로만 생각되고 잊혔다. 그런데 1990년대 한국 안기부 간부가 납북자 문제를 추적하던 일본인에게 13살 일본인 소녀 납치 가능성을 전해줬고, 일본 내에서 확인을 거쳐 피해자가 요코타일 개연성이 부각됐다. 10대 초반 소녀까지 납북됐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일본인 납북자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큰 파급력을 지닌 사안이 됐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과 평양선언은 일본 사회에 다시 한번 큰 충격을 줬다. 고이즈미 총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납북자 문제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북한의 일본인 납치가 확인되고 다시 상기되면서 일본 사회 여론은 악화됐다. 특히 요코타를 포함한 피해자 8명은 이미 사망했다는 북한의 발표에 대해 일본 사회는 납득을 하지 못했다. 당시 관방부장관으로 고이즈미의 방북에 동행한 아베 총리는 북한이 일시귀국 형태로 돌려보낸 피해자 5명의 영구귀국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납북자 문제에 대한 강경론을 주도한 아베는 정치적으로 스타가 됐고, 2006년 52살에 전후 최연소 총리에 올랐다. 아베 총리는 이후에도 대북 압박을 주도하면서 납북자 문제 언급을 항상 빼놓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가 평양선언과 후속 조처로 해결됐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양쪽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으로 체제 안전 보장을 어느 정도 받는다면 다음으로 필요한 경제협력은 일본에서 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은 압박과 함께 대화 가능성도 흘리면서 납북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일본 외교의 끈질기고 유연한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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