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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동아시아를 ‘비핵지대’로 / 길윤형

등록 2018-05-01 18:14수정 2018-05-01 19:08

길윤형
국제뉴스팀장

지난 3월13일 한국 시민사회가 오랜 벗인 후쿠야마 신고 등 일본 평화 활동가들을 초청해 ‘한일시민평화회의’란 심포지엄을 열었다. 그곳에 토론자로 불려가 남북과 일본을 묶어 ‘동북아시아 비핵지대’를 만드는 것이 북핵 문제 해결의 합리적 대안이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주장을 접하게 됐다. 당시 토론에선 “한-일의 대북·대중관엔 큰 차이가 있으니 그런 구상이 현실화되긴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확인한 이상, 이 계획을 남북과 일본을 포괄하는 동아시아 시민사회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 설정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많은 전문가들이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가 명문화됐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어떻게 정의할지를 두고 남북은 물론 북-미 사이에 심연과 같은 견해차가 존재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우선, 완전한 비핵화란 표현이 사용됐으니, 1992년 2월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떠오른다. 이를 보면 남북은 핵무기를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하지 않고,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으며, 비핵화 검증을 위해 사찰을 실시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북한이 생각하는 ‘조선반도 비핵화’ 내용은 지난 25년에 걸친 ‘험한’ 우여곡절을 거치며 달라졌을 수밖에 없다. 1992년은 냉전 해체 직후였고, 북의 핵 능력은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북은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 발사에 성공한 뒤,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런 능력을 갖춰가던 2016년 7월 북한은 그들이 생각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의 5대 조건을 밝혔다. 그 안엔 △남조선에 배치된 미국의 모든 핵무기 공개 △그에 대한 검증 △한반도와 그 주변에 핵 타격 수단을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약속 △그 어떤 경우에도 핵의 공갈·위협·사용이 없다는 확약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이를 충족하려면, 미국은 한국에 대한 확장억지(핵우산)는 물론, 수틀리면 북한을 핵으로 때리는(혹은 때리겠다 위협하는) ‘핵 옵션’도 철폐해야 한다. 북핵 포기를 목 놓아 외치는 많은 이들이 미국의 확장억지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공포를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한반도의 가장 거대한 ‘내로남불’이 아니던가.

동북아시아 비핵지대론의 원조는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모턴 핼퍼린이다. 그가 2011년 제창한 동북아시아 비핵지대(NEA-NWFZ)론을 보면, 남북과 일본이 비핵지대의 ‘지대 내 국가’가 되고, 미·중·소는 ‘주변 핵 국가’가 된다. 지대 내 국가들은 핵무기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주변 핵 국가들은 핵은 물론 통상무기로도 공격하지 않는다는 실효성 있는 안전보장을 해야 한다. 실제 지구상엔 중남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5개 비핵지대가 있다.

이 구상이 현실화되면, 동아시아의 핵 대결이 멈추고, 미사일방어(MD)에 천문학적인 돈을 쓸어넣거나, 지난해 사드 갈등에서 확인했듯 안방에서 지(G)-2 갈등이 벌어지는 꼴을 피할 수 있다. 일본도 핵무기 6000발분(47.9t)의 어마어마한 플루토늄 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 큰돈을 써가며 ‘핵연료 사이클’을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핵 문제를 정말로 해결할 수 있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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