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여?”

등록 2018-05-06 22:14수정 2018-05-06 22:23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개인들이 연대해 ‘우리’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일 ‘대한항공 직원연대’가 서울 광화문에서 연 ‘갑질 퇴진’ 촛불집회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우리 모두에겐 뇌가 쭈그러드는 비참함을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나는 화를 내지 않아요. 대신 암을 키우죠.”

영화 <맨해튼>에 나오는 우디 앨런의 말이다. 이 말이 시사하듯이, 요즘 사람들은 주변의 누가 암에 걸렸다고 하면 대뜸 스트레스 이야기부터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오남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병을 스트레스 문제로 환원하는 ‘스트레스 결정론’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 결정론엔 그럴 만한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자기계발 산업이 그걸 이용하면서 지나치게 부풀려진 게 문제다.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자주 ‘피해자 탓하기’로 이어진다. 암에 걸린 환자가 치유되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환자가 충분히 긍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심지어 ‘암을 부르는 성격’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스트레스 유발 요인은 마치 자연의 법칙인 양 그대로 둔 채 스트레스를 긍정적 사고로 날려버릴 수 있다는 복음만 흘러넘치고 있으니 말이다. “참으면 암이 된다”는 속설을 너무 신봉한 나머지 참아야 될 일에까지 분노를 터뜨리는 것보다는 낫긴 하다. 하지만 이 복음은 정반대의 방향으로도 작동해 스트레스와 암의 모든 책임이 피해자에게만 돌아가게 만든다.

만약 스트레스 결정론이 옳다면 우리는 사회적 차원에서 스트레스를 낮추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스트레스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집단적으로 그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들을 칭송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매진하는 경향이 있다. ‘멘탈’이니 ‘근육’이니 하는 말까지 동원해가면서 그게 강해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몰아감으로써 사실상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들을 ‘루저’로 취급하는 이상한 일을 당당하게 저지르고 있다.

아무리 강한 멘탈의 소유자라도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데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존 메디나가 <브레인 룰스>라는 책에서 잘 지적했듯이, “정글에서 호랑이를 만났을 때 먹히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1분이면 결판나지만, 못된 상사 아래서 지내는 것은 몇 년 동안 방문 앞에 호랑이를 두고 지내는 것과 같다. 이런 경우, 여러분의 두뇌는 실제로 ‘쭈그러든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라는 속설이 통용되는 우리 사회에선 실제로 ‘지옥’을 피하기 위해 뇌가 쭈그러드는 비참함을 감수하는 직장인이 무수히 많다. 그들은 쭈그러드는 뇌를 일시적으로나마 풀기 위해 마시거나 먹지만, 그게 해결책일 수는 없다. 직장 내 괴롭힘이 심한 기업의 경영자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런 비참함을 없애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겠건만, 그들은 그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왜 그럴까? 전부는 아닐망정 그들 자신이 그런 괴롭힘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경영자들은 기업이 비민주적일 때 더 효율적이라는 낡아빠진 미신을 믿으면서 직장 내 괴롭힘을 일종의 노무관리기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런 미신의 연장선상에서 ‘복종’과 ‘상명하복’을 자신의 지위를 만끽하는 기쁨으로 간주해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만화와 드라마로 유명해진 <송곳>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명대사 한 토막에 그 답이 숨어 있다. “프랑스는 노조에 우호적인 사회라고 들었는데 우리 회사는 프랑스 회사에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그렇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는 사실상 “당신들에게는 그래도 되니까”라는 의미다. 누구나 세상 살면서 한번쯤은 내뱉었을 법한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여?”는 바로 그걸 지적하는 항변이다. 한 줌의 권력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법이다.

개인의 처지에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유로 만만하게 보이는 걸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개인들이 연대해 ‘우리’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일 ‘대한항공 직원연대’가 서울 광화문에서 연 ‘갑질 퇴진’ 촛불집회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우리 모두에겐 뇌가 쭈그러드는 비참함을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김건희’ 위해 “돌 맞고 가겠다”는 윤 대통령 1.

[사설] ‘김건희’ 위해 “돌 맞고 가겠다”는 윤 대통령

김 여사가 대통령 같은 나라 [뉴스룸에서] 2.

김 여사가 대통령 같은 나라 [뉴스룸에서]

[사설]‘해병대’ 수사 방해하려고 공수처 인사 질질 끄나 3.

[사설]‘해병대’ 수사 방해하려고 공수처 인사 질질 끄나

학교예술강사 예산 72% 삭감…‘K-컬처’ 미래를 포기하나 [왜냐면] 4.

학교예술강사 예산 72% 삭감…‘K-컬처’ 미래를 포기하나 [왜냐면]

윤 대통령의 ‘부하’를 자처하는 최재해 감사원장[아침햇발] 5.

윤 대통령의 ‘부하’를 자처하는 최재해 감사원장[아침햇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