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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검찰개혁의 CVID / 여현호

등록 2018-05-08 18:10수정 2018-05-08 19:10

여현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검찰 분위기가 요즘 미묘하다. 임기가 절반 이상 남은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달 25일 ‘차기 총장’을 입에 올렸다. 그는 검찰개혁으로 “검찰 구성원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이라며 “나머지 검찰개혁은 ‘뒷분’에게 넘겨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삿일이 아니다. 그러잖아도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두고 ‘검찰 패싱’이란 불평이 나오는 터다. 진행 중인 검찰 내부 의견수렴 과정에서 문 총장이 말한 “내부의 불만 목소리”가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개혁이 동티가 나 검찰총장이 물러난 전례도 있다. 2012년 한상대 전 총장은 대검 중수부 폐지를 밀어붙이다 ‘검란’이라는 초유의 내부 반발로 물러났다. 김준규 전 총장은 2011년 검·경수사권 조정 합의가 국회에서 깨진 데 항의해 사퇴했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법무부령에 위임하기로 한 애초 합의 대신 대통령령에 위임했다는 이유였다. 그런 ‘세세한’ 문제 제기가 앞으로 왜 또 없겠는가. 언제든 총장이 ‘직을 거는’ 상황이 올 수 있고, 내부 압박이 벌어질 수 있다.

검찰이 개혁에 저항할 수 있는 처지인지에 대해선 이견이 많겠다. 잇따른 비리 폭로와 거듭된 개혁 실패로 검찰의 입지는 어느 때보다 좁다.

그런 마당에도 손익계산은 가능하다. 지금까지 개혁 논의에서 검찰로선 아직 특별히 큰 손해는 없었다고 생각할 성싶다. 예컨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권한과 위상, 기능에서 애초 구상보다 크게 약화한 법안이 만들어졌다. 호랑이 대신 애완 고양이를 내놓은 격이다. 검찰이 “공수처 도입을 받아들이겠다”고 할 만하다.

검찰이 한 손에 쥔 수사권과 기소권 어느 것도 근본적인 손실은 없다. 특히 수사권이 그렇다. 검찰의 직접수사는 부패범죄, 경제·금융범죄 외에 공직자 비리와 선거범죄 수사까지 유지하는 쪽으로 조율됐다고 한다. 특별수사 대상을 한정한다지만, 지금 검찰의 특별·공안 수사가 대체로 그 범위다. 검찰이 전국 검찰청의 특별수사 부서를 5개 지검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혔지만, 역시 기능 유지가 전제다. 나중에 언제든 다시 늘릴 수 있다. 직접수사를 제한하겠다면 형사부의 직접수사부터 막아야 할 것인데, 검찰은 전문성 강화를 앞세워 분야별로 11개의 중점수사검찰청을 지정했다. 수사권의 단계적 축소가 아니라 확연히 유지·강화 쪽이다.

이제 검찰개혁에서 검찰 조직의 ‘마지노선’은 ‘수사지휘권 유지’인 듯하다. 이것까지 지키면 검찰로선 잃을 것도 딱히 없을 터이다. 검찰은 경찰의 영장 신청에 보완을 요구하는 소극적인 지휘 말고 지금처럼 경찰 수사를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지휘하는 등 사법적 통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경찰의 수사종결권도 일부 인정하고, 모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전건 송치도 양보할 수 있다고 한다.

수십년째 해결되지 않은 북한 핵문제에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원칙이 있다. 오래 해결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인 검찰개혁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언제든 물릴 수 있는 자체 개혁의 약속보다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디테일의 악마’에 휘둘릴 ‘세부 내용의 위임’ 대신 ‘명시적인 권한 가르마’가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수사기관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법원의 몫이며, 검찰의 법률가적 역할은 수사가 아닌 공소권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 원칙대로 검찰이 직접수사를 전면 포기하겠다고 선언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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