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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이상한 삼촌은 이중 스파이 / 이명석

등록 2018-05-18 19:15수정 2018-05-18 19:58

이명석
문화비평가

“삼촌 집은 어디야?” 친구 부부의 집에 놀러갔다 나오는데, 다섯살 먹은 막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물었다. “여기서 멀어. 차를 세번 갈아타고 강을 두번 건너야 해.” “그래도 괜찮아. 자전거 타고 가면 돼.” 그래서 나는 동물들을 함께 그렸던 스케치북을 넘겨 커다란 지도를 그려주고 나왔다.

나중에 부모에게 들었는데 막내에게 못된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예전에는 말을 안 들으면 집에서 쫓아낸다고 야단쳤거든. 그런데 이제는 자기가 먼저 가방을 싸요. 네가 갈 데가 어디 있어, 그러면 뭐라는지 알아?” 대충 예상은 했다. “파마머리 삼촌 집에 갈 거야.”

아이에게 부모가 필요한 건 당연하다. 그런데 나 같은 이상한 삼촌이나 이모도 필요하다. 어른이지만 어른스럽지 않은 이들이다. 부모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크다. 그래서 아이가 뭘 하고 싶다면 반대부터 한다. “엄마, 나 아이돌 콘서트 가고 싶어요.” “얘가 겁도 없네. 끝나는 시간이 자정이잖아.” “아빠, 나 기타 배우고 싶어요.” “딴따라 짓은 대학 가서 해.” 그럴 때 이모 차를 타고 콘서트에 가고, 삼촌 집에 기타를 숨겨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 입장에서도 이 장치가 요긴하다. 잠시 아이를 맡기고 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모 삼촌을 통해 아이의 속내를 염탐할 기회를 얻는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라일리가 전학 간 반에 센 척하는 아이 ‘쿨 걸’이 있다. 무엇이든 시큰둥한 요즘 청소년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아이의 마음 조종간을 주로 움직이는 게 누굴까? 삐딱한 성격으로 보아 까칠이일 것 같지만 의외로 소심이다. 그 아이의 두려움을 걷어줄 수 있는 게, 애 같은 어른인 이모 삼촌이다.

그렇다면 왜 이상한 삼촌이어야 하나? 모범적인 삼촌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걸 묻는다. “너 반에서 몇등 정도 해? 대학은 어디 가고 싶어?” 아이는 삼촌이 간첩인 걸 곧바로 알아챈다. 하지만 이상한 삼촌은 바로 그런 질문의 총탄들로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사람이다. “너 왜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 안 하니? 머리랑 옷 꼴은 그게 뭐니? 조카랑 그만 놀고, 네 애 낳아서 키워.” 그러니 자기가 듣기 싫은 질문을 아이에게도 안 한다. 대신 같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나눈다. “밀가루떡볶이는 땡땡 체인점이 최고 아니냐?” “이번주 <뮤직뱅크>는 정말 역대급이었지.” 그러면서 부모의 흑역사를 슬쩍 알려주기도 한다.

하나 큰 문제가 있다. “조카는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나?” 결혼 안 하는 이상한 삼촌 이모가 늘어나고 출생률은 떨어지고 있다. 친척들은 멀리 떨어져 바쁘게 사니 얼굴 보기가 어렵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삼촌은커녕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다. 그러니 ‘조카 바보’가 될 수 없는 이들은 ‘랜선 이모’를 선언하며 에스엔에스(SNS)에서 귀여운 아이를 들여다보는 데 만족한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세대 사이의 단절은 심해지고 있다. 부모와 아이 세대를 평범한 바느질로 이을 수는 없다. 그들 사이를 촘촘히 이어줄, 혈연은 아니지만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언니 형 이모 삼촌을 찾아야 한다. 부모의 지인 중에서, 동네의 커뮤니티에서, 혹은 랜선에서라도. 어떨 때는 아이가 직접 찾아낸다. 예전에 살던 빌라에서 꼬마들과 함께 구덩이에 빠진 새끼 고양이를 구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꼬마들이 고양이를 보고 싶다며 내 집을 찾아왔다. 물론 더 큰 목적은 나의 수집품인 장난감과 동물 인형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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