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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북-미 정상회담과 민주당 변수 / 이용인

등록 2018-06-07 17:58수정 2018-06-08 15:52

이용인
워싱턴 특파원

“카르페 디엠.”(CARPE DIEM)

최근 만난 민주당 성향의 한 미국인은 노트에 이렇게 써줬다. 라틴어인 이 말은 “시즈 더 데이”(Seize the day), “현재를 잡아라”, “눈앞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년 넘게 의회 생활을 했고, 행정부에서 고위 공직자까지 지낸 이 미국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에 지극히 부정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해서는 안 되고, 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2일 싱가포르 회담에 대해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매년 되풀이되는 긴장 고조, 지난해 전쟁 위기, 우리 정부의 북-미 정상회담 중재 노력을 한참 얘기한 뒤에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솔직히 민주당 인사들 가운데 이런 미국인이 많지는 않다. 민주당 쪽의 ‘반트럼프 정서’는 꽤 깊고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적대감까지 보인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을 만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까지 실망감을 표시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이들에게는 북핵 문제 해결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재집권을 막는 국내 정치가 더 우선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잡지 못하면 2020년 대선은 상당히 불리한 싸움이 된다. 당장 정권의 운명이 걸려 있는데, 또한 북한도 미덥지 않은데, 이들의 머릿속에 한반도 상황이 크게 자리잡을 수가 없다.

의회 사정에 밝은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의 성과를 내는 것은 민주당 입장에선 끔찍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8년 동안 악화 일로를 걸었던 북핵 문제를 ‘대통령답지도 않은’ 트럼프 대통령이 해내는 것은 민주당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다.

척 슈머 원내대표 등 민주당 상원 지도부가 지난 4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과 합의해야 할 ‘5대 원칙’을 담은 서한을 보낸 것도 민주당 저변에 깔린 기류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요구 조건을 보면 △모든 핵·생화학무기 해체·포기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중단과 핵시설 해체 △영구적 합의 보장 등으로, 미국 정부 내 초강경파나 과거 공화당이 북한에 요구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핵 문제 해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상관관계가 깊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한 전문가는 “북핵 해결이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은 한국 중심의 사고”라며 “미국 국내 이슈만큼 파괴력이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민주당이 북핵 협상을 정치적 쟁점으로 삼고, 민주당과 트럼프 행정부의 이견 격차가 커지는 것은 우리 입장에선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민주당의 견제가 건강하게 작동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덜컥수’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이 여전히 우리에게 도전적 요소인 점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구석에 몰아넣는 방편으로 이를 활용한다면 북핵 문제 해결의 동력이 떨어질 것은 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느 날 ‘나는 그런 합의를 한 적이 없다’며 발을 빼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국무부 전직 고위 관계자는 정책 입안 때 고려하는 정책 고객의 우선순위를 묻는 질문에 “첫째가 의회, 둘째가 동맹이나 관련국”이라고 귀띔했다. 한국에선 워싱턴 한반도 전문가 집단의 목소리에 크게 신경 쓰지만, 실제 정책 입안 때 큰 비중을 두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의회의 움직임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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