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남들은 올케언니와 친정엄마와 딸, 이렇게 셋이 하는 여행이 얼마나 근사하냐 했겠지만 실은 올케언니는 애꿎은 볼모였다.(물론 언니는 자기 역할이 김정은과 트럼프를 다독이는 문재인 대통령 같다고 했다.) 반나절에 한 번은 드러내놓고, 한 번은 하다 말고, 한 번은 속으로 다투는 모녀와 그 사이에 낀 올케언니의 여행은 모두에게 무모하거나 천진한 모험이었으나 어쨌든 우리는 감행했다. 나는 실수했고, 언니는 그 실수를 조정했고, 엄마는 기대를 줄여간 덕분에 우리의 여행기는 그럭저럭 무사히 해피엔딩으로 마쳤다. 처음에 나는 엄마에게 유명 관광지를 도는 여행 따윈 하지 말고 느긋한 휴식 여행을 하자고 했다. 싱그러운 바람을 쐬고, 오래된 숲에서 축축한 곰팡이 냄새를 맡고, 검은 바위에 앉아 비취색 바다를 감상하다가 이쁜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앉아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자고 했다. 내가 신이 나서 여행 콘셉트랍시고 떠들 때 엄마는 대꾸가 없었다. 그런데 제주의 바닷가에 앉아서 반짝이는 초록 물빛과 초여름 바람을 맞는 것, 차를 타고 낮고 오래된 돌담이 쳐진 밭을 천천히 지나치는 것, 그런 것들이 도대체 엄마 취향이 아니었던 거다. 심심하게 앉아서 시간을 축내고, 서툰 운전에 맘 졸이고, 젊은 애들 시시덕거리는 거 보는 것도 고역인데, 게다가 시답잖은 대화라니! 엄마는 ‘너나 실컷 좋아라’ 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좋은 것과 엄마가 좋은 것이 다르다. 그 때문에 오랜 세월 많이도 다퉜다. 나는 내가 좋은 것을 엄마도 맛보게 해주고 싶은데, 엄마는 참 완고하게도 그런 것들이 싫다. 엄마도 마찬가지였으니, 고집 센 모녀는 서로 간에 상대가 싫어하는 선물만 떠안기면서 살아온 셈이다. 나는 한적한 금녕 바다가 참 이뻤는데 엄마는 북적이는 협제해수욕장이 멋있다고 했고, 나는 비자림숲에 가고 싶었는데 엄마는 올레시장에 가고 싶다고 했다. 너도 나이 먹어 봐라, 사람 북적이는 곳이 좋은지 한적한 곳이 좋은지. 엄마가 이렇게 말했을 때에야 알아챘다. 여든 된 우리 엄마는 혼자 밥 먹고 혼자 텔레비전 보다 혼자 잠드는 거, 저녁 어스름의 적막, 이런 것들이 싫다. 한적하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고요한 휴식 같은 것은 이미 너무 많이 해서 지겹다. 생동감 넘치는 부산스러운 곳,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곳, 이런 곳이 좋은 엄마한테 숲과 바람과 파도만 있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쉬자 했으니, 이보다 더 한심하고 이보다 더 덜떨어진 딸도 없었겠다. 그런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뜬금없이 아들 생각이 났다. 걔가 살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현관을 나서는 일이 온 신경을 쥐어짜듯 긴장하게 하는 일이라 밖으로 나가기 싫은 아들녀석이 살고 싶은 곳, 여행하고 싶은 곳은 외할머니가 바라는 곳과 많이 다를까. 아들의 취향은 잘 모르겠으되 내가 바라는 녀석의 거처는 분명하다. 사람 사는 마을, 이웃이 있는 곳에서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거다. 요란하게 말을 걸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안부를 무심한 듯 챙겨주는 이웃들이 있는 곳. 발달장애가 있는 자식을 둔 어미들의 소망은 모두 이것이다. 아들에게 엄마를 영원히 남겨놓고 싶으나 이룰 수 없는 소망이니 ‘나’ 대신 내 역할을 사회에서 해주기를, 도처에 엄마가 만연한 마을에서 살 수 있기를.(우리 엄마도 도처에 딸자식 냄새가 만연한 집에서 살고 싶으시겠으나, 이해하시리라, 모든 얘기의 결론은 제 새끼로 몰고 가는 딸년의 고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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