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 압둘라? 며칠 전 <한겨레>가 보도한 예멘 난민, 당뇨 환자다. 일주일이 지났는데, “돈도 없고, 어디서 인슐린을 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던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혹시 혼수 같은 위급한 합병증이 생긴 것은 아닐까? 생명을 구하려 이 땅을 밟은 이들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지, 마음이 무겁다. 이번에는 난민의 건강권을 다루기로 작정했으나, 몇몇 수석비서관이 바뀌는 바람에 글이 좀 어지러워졌다. 경제정책 방향, 나아가 국정 기조를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압둘라의 운명과 무관한 변화인가? 이로써 모든 삶을 규정하는 권리와 불평등은 어떻게 달라질지가 마음을 흔드는 질문이다. 나 혼자만 과거사를 떠올리는 것은 아닐 터. 참여정부는 시작 열달 만에 이정우 정책실장을 관료로 바꾸었고, 이유를 ‘국정장악’ ‘현안과제 조정’ ‘실행능력’ 등으로 설명했다. 지금과 판박이다. 이후 경과도 기억하는 그대로, 정책은 시장만능주의로 기울었고 개혁 동력은 약해졌다. 갈수록 관료에게 포획당했다는, 당시 그리고 이후 평가도 잊을 수 없다. 앞날을 걱정하는 것은 배운 바가 있어서다. 정부는 성장전략에 균형을 잡는다 하지만, 성과가 급하면 곧 ‘혁신성장’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문제는 이 성장론에 실속이 없는 점, 그러니 오랜 레퍼토리이자 시장만능을 상징하는 ‘규제개혁론’이 득세할 공산이 크다. 이달 15일 경총이 내놓은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 과제, 그리고 맞춘 듯 경제부총리가 했다는 발언이 심상치 않다. 경총은 “영리병원 설립, 원격의료 허용 등 부가가치가 높은 의료산업에 대한 규제개혁이 이루어질 경우 18만7천개~37만4천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건의한 과제는 아홉가지, 그중 네가지가 의료를 산업으로 하자는 것이다. 영리병원, 원격의료, 의사·간호사 인력, 드러그스토어 산업 등 다시 ‘의료산업’에 기댄 혁신성장이라니, 비전도 방법도 이렇게 부실할 수가 있나 허무할 지경이다. 기승전-규제완화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경제부총리가 혁신성장 장관회의에서 말했다는 내용도 경총 주장과 완전히 조응한다. “혁신성장이 말로 그치지 않고 시장과 기업,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등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이해관계자의 대립이나 사회 이슈화로 혁신이 잘 안 되는 분야도 규제혁신 방안을 조속히 만들어….” 짐작하건대, 의료산업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의료산업과 규제 완화의 허구는 다시 설명하고 설득하기도 지칠 지경이지만, 몇 마디만 보탠다. 건강과 보건의료는 본래 경제성장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만에 하나 그렇다 해도 국민의 주머닛돈에 의지해야 한다. 병원이 돈을 엄청나게 벌고 원격의료와 관련 산업이 제약산업만큼 늘어난다 치자. 그 돈은 어디서 온 것인가? 이익은 개인화하고 부담은 사회화하는 것이면, 경제를 키워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규제를 풀고 일자리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불평등만 키우는 성장, 지출과 부담이 늘어나는 가계, 빈곤을 예비하는 질 낮은 일자리가 건강과 안녕에 닿을 리 없다. 제주에서 생명을 투쟁하는 압둘라와 뙤약볕에 일하느라 병원 갈 틈도 없는 늙은 농사꾼이 무엇이 다르랴. 삶의 질을 높이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권리를 높이고 불평등을 줄이는 경제라야 생명이 산다. 가치와 수단을 뒤집지 말라. 건강할 권리를 누리고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가치라면, 경제와 혁신과 일자리는 이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슈우리 안의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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