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요즘 40~50대 여성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얘기가 딸과의 갈등이다. 우리 또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래, 넌 나처럼 살지 말아라”라며 딸들을 위해 희생하던 엄마 세대와 우리 세대는 좀 결이 다르다. “꼭 극단적 표현을 써야 해?” “반발만 키울 텐데.” 친구 말에선 억울함도 묻어났다. “내가 남성중심 조직에서 살아남으려 얼마나 바둥거렸는데.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같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 아냐?” 혜화역 시위는 우리 사회가 어떤 결절점에 와 있다는 징후로 보인다. ‘소수 과격페미’라 치부하는 이들도 있지만, 6만명이다. 전국 단위 그 어떤 단체도 조직하기 쉽지 않은 규모다. 게다가 그 핵심은 1020들이다. 몇해 전 정년을 앞둔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와 한 인터뷰가 부쩍 떠오른다. 97년 금융위기 이후 여성지위 향상이 ‘여성 성공시대’로 변질된 점을 짚으며 그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했는데 아빠처럼 된 건 아닌가”라고 물었다. 혜화역 시위는 이 질문에 어딘가 닿아 있는 듯하다. 지금까진 ‘여성을 더 배려하라, 발탁하라, 이게 남성에게도 좋은 것’이라며 설득만 했다. 그런데 강남역 사건과 수많은 불법촬영(몰카) 피해에서 보듯 여성들의 죽음과 고립과 자책으로만 돌아오지 않았냐는 것이다. ‘남녀가 평화롭게 지내야지’란 말이 사실은 조직 안에서 순응하며 남성을 위협하진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라는 얘기 아니냐는 것이다. 이제 선의든 뭐든 ‘배려’나 ‘원한 풀어주기’는 됐으니 시스템과 룰을 바꾸라는 것, 집단화한 1020 여성들이 사회에 균열을 내는 이 낯선 현상에 어떤 이는 위협감을, 어떤 이는 당혹감을 느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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